▲ 헌법규범은 경제정책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일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사진은 헌법재판소 전경. 

글 싣는 순서

 1. 경제민주화 담론의 역사적 맥락과 발전 과정
 2. 헌법적 해석 및 정책과의 상관관계
 3. 세부 각론 1) 재벌
 4. 세부 각론 2) 노동시장의 양극화
 5. 세부 각론 3) 복지의 중요성
 6. 정당과 학계 및 시민단체의 견해 차이
 7. 경제민주화의 실현가능성

 

 

1948년 헌법서 경제적 민주주의 규정했지만

5·16 군사쿠데타, 1987년 헌법 제정 거치며

원래 의미 퇴색돼 기본권 침해를 야기했다

 

최초에 와서야 주목받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헌법이 명령하는 경제민주주의의 일부분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헌법 제119조 제2항이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제1항에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때문에 보수적인 이들은 헌법의 경제질서 원칙이 시장과 자유이며, 국가의 조정과 개입행위는 시장의 실패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예외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사실 헌법이 지향하는 경제적 민주주의 규범은 1948년 헌법 제정 이래 다소 주춤했다. 1948년 헌법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로 성립한 1962년 헌법은 지금과 같이 그 순서를 뒤바꿨고, 역설적이게도 ‘민주화’ 헌법인 1987년 헌법은 “기업의 자유”를 포함시켰다. 이때 들어간 경제민주화는 단지 재벌 위주의 경제력 편중과 그로 말미암은 정치경제적 폐해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헌법상의 경제민주주의는 다른 헌법조문과의 체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헌법으로부터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직접 도출할 수는 없다. 헌법이 추상적인 문언으로 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정책은 민주주의적인 방식의 의사결정에 의해 변화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헌법규범은 경제정책에 대하여 방향성을 제시하고 일정 범위를 벗어난 경제정책에 대한 헌법으로부터의 일탈을 판단하는 잣대로 작동한다. 

따라서 주요한 헌법조항을 되새겨보는 것은 중요하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가권력은 물론 경제권력을 포함한다. 근대 헌법이 국가권력 통제법이라면, 현대 헌법은 국가권력 통제법 더하기 경제권력 통제법이다. 기업의 자유는 국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며, 그 범위 내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헌법 제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에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있다’고 해석된다. 이 역시 1962년 헌법에서 후퇴한 것이지만, 헌법재판소는 “사기업의 ‘경영에 대한 통제 또는 관리’라 함은 비록 기업에 대한 소유권의 보유주체에 대한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사기업경영에 대한 국가의 광범위하고 강력한 감독과 통제 또는 관리체계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헌재 1998.10.29. 97헌마345).  

한국의 재벌은 매우 낮은 지분율만으로도 ‘전제군주제적 세습경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국민경제에 위협이 된다. 재벌은 중소기업의 영역에 대한 문어발식 확장과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구조를 만들어냈는데, 헌법 제123조 제3항은 “중소기업의 보호”를 경제정책 목표로 명문화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지원을 통하여 균등한 경쟁조건을 형성함으로써 대기업과의 경쟁을 가능하게 해야 할 국가의 과제를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재벌개혁의 방향은 민주적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본권의 영역으로 눈을 돌리면, 경제민주주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헌법 제32조는 근로의 권리,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 등을, 제33조는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의 증가, 정리해고와 직장폐쇄, 10%에 불과한 노동조합 조직률, 노조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과 손해배상 인정, 심지어 용역 폭력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는 헌법파괴의 수준이다. 법정 최저임금은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안전망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저임금이 가장 낮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밖에도 헌법은 사회적 기본권을 예시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건강권과 주거권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국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편 자본 또는 기업 측은 재산권을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헌법 제23조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도록’ 하면서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때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그 권력적 파급효과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즉 권력적 파급력을 가진 재산권은 기본권의 지위를 온전하게 향유할 수 없다. 재산권은 민주주의에 선행(先行)하지 않고 후행(後行)하며, 공공복리에 복무해야 한다. 재산권은 노동권을 비롯한 사회적 기본권에 맞서지 못하며, 민주주의 의사결정에 따른 입법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헌법규범을 왜곡하고 있다. 대법원은 ‘경영권’을 헌법 차원의 권리로 격상시키는 반면 노동3권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경영권은 ‘경영상의 프리미엄’과 같이 대외적인 자산 가치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용어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경영권을 노동3권을 제약하는 헌법상의 권리로 ‘창조’하였다(대법원 2003.7.22. 2002도7225).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의 실시 여부가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판시하면서 이에 대한 파업을 형벌로 처벌하였다(대법원 2002.2.26. 99도5380). 독재정권 시절의 통치행위론을 연상시키는 경영권론은 사적 자본권력에 민주적 공권력 이상의 전제주의적 통치권력을 인정한 것으로서 ‘사법쿠데타’라고 부를 만하다.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오동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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