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에 ‘중앙대 유리’가 이슈 검색어로 떠올라 빛의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개교 기념 4D 아트쇼의 진행을 맡은 여신의 사진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순간 선배이자 남성 팬으로서 금할 수 없는 벅찬 마음과, 모교의 생일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는 미안함이 교차했다.
 

  이어 페이스북에 접속하니 중대신문 페이지에는 친절하게도 그날 아트쇼 행사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다시 마우스를 클릭. 영상이 끝나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박수를 쳤다. 귀담아야 할 건전한 비판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멋지고 근사한 방식의 축하가 가능했다는 사실과 신선함이 좋았다. 개교 100주년이 되면 승천한다는 청룡의 전설도 왠지 실현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중대신문 개교기념 특집 지면은 어땠을까. 이상하게 떨리거나 박수를 치고 싶지는 않았다. ‘응답하라 1918’이라는 센스 있는 타이틀에 비해 내용은 무척이나 평이했다. 가혹하게 말하자면 단지 지난 뉴스를 재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국사책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연대기별 구성. 여기에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엔 뭔가 부족한 다섯 가지 키워드와 이슈들. 그리고 면 막음 이상의 의미가 없어 보이는 ‘사라진 것들을 찾아서’까지. 만드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을 고려한 콘텐츠 기획은 어디로 갔을까. 개교기념이라 해서 꼭 근엄할 필요는 없고 역사의 핵심 요약이 꼭 딱딱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글자는 같아도 의미는 다른 것 일진데, 행사(事)와 축사(辭)는 왜 그렇게 꼭 붙어 다니는 것인지.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예언을 해보자면 축사의 나열은 중앙대 개교 100주년 특집호에도 어김없이 등장할 것이고, 2018학번의 대부분도 그 지면을 유심히 읽지 않을 것이다. 특집 기획팀의 고민과 고생을 잘 알고 있지만, 중대신문의 역량을 믿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번뜩이는 결과를 아쉬워한다.

최성우 동문(신문방송학과 0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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