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이 떨어진 것일까. 국어사전에서 찾은 사명감은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지만 기자에게 어느새 ‘잘’이란 글자는 지워진 듯하다.
 

  현재 기자는 학생 기자라는 신분 속에 학생과 기자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고 있다. 두가지 신분으로 나름 특별하게 지내다보니 이젠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저 힘들어요’라는 생각이 앞선다. 사실 매일 홀로 한계에 부딪히며 기자의 부족한 역량을 자책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근래에 부쩍 예민해졌다. 신경질만 늘다 보니 미간 한 가운데 패인 주름은 안 본 사이에 더 선명해졌다. 옆자리에 앉은 동기에겐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꼴에 부장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꼭 남 탓하는 것 같아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다.
 

  마음이 불편한 와중에도 기자의 전화벨은 쉴 틈 없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항상 다급하다. “김 기자님! 얼마 전에 취재 오셨던 강연 기사 들어가나요?” “아, 아직 결정 안됐습니다. 지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요.” “사진 기사라도 꼭 들어가야 해요. 부탁할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친절하게 전화로 확인까지 하는 취재원들은 저마다 제 기사를 지키기 위해 기자를 괴롭힌다. 전화 3통이면 비교적 정상이다. 간혹 10통이 넘어가는 부재중 전화에 쏟아지는 문자메시지로 기자를 무섭게 만드는 취재원도 있다. 솔직히 이런 취재원들을 일일이 상대하기가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화면에 찍힌 02-820으로 시작하는 취재원들의 전화번호를 보며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이 사람들 왜 이렇게 귀찮게 하지?’라며 일부러 천천히 받기도 했다.
 

  정작 어리석게도 기자는 그들을 귀찮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끈질기면서도 애가 탈정도로 매달리는 그들이 한심하고 귀찮은 것 같다고.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들에 대한 귀찮음과 한심함은 기자에게 숭고한 끈질김과 질긴 생명력으로 다가왔다. 기자에겐 사라지고 있는 사명감이 아직 그들에겐 충분했던 것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에 대한 애정도 기자보다 넘쳤다. 그들의 애정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관련된 기사의 끈질긴 게재 촉구로 이어졌다. 그들은 이미 각자 나름의 자리에서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몰라봐서 미안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매일 만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라봐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기자는 요즘 취재과정에서 끈질김도 없었고 애태울 정도로 매달려 본 적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기자의 ‘요즘’을 표현하자면 민들레 꽃씨라 말하고 싶다. 가을바람에 정처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모습이 꼭 들어맞는다. 하지만 민들레 꽃씨는 토양의 비옥함과 상관없이 어디든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이제 기자도 뿌리를 내릴 때다. 뻔한 소리지만 슬그머니 아마추어 정신을 끄집어 내려고 한다. 신입의 마음으로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려고 한다. 당신이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미리 전한다. “이젠 귀찮아질테니 조심하세요.”
 

김성호 대학보도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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