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어렸을 적 제 별명은 ‘꼴통’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선 제가 사고를 칠 때마다 “몇번을 말해도 왜 고치질 않냐”며 “이 꼴통아!”라고 혼내시곤 했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건지, 듣고도 한귀로 흘리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의 저에게 부모님의 말은 별로 약발이 먹히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엔 “자꾸 왜 잔소리야”라는 생각만 가득했으니까요. 덕분에 애먼 부모님만 잔뜩 고생하셨습니다. 


 지난 학기 전학대회에 관련된 기사를 썼을때야 비로소 저희 부모님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족수 미달로 5년째 무산되고 있는 전학대회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학생 대표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가장 당연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식 개선’에 관한 이야기는 쓰지 않았습니다. 지난 학기에도, 그 전 학기에도. 심지어 20여년 전의 중대신문에도 학생 대표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기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20년 가까이 아무리 외쳐봤자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결국 저희는 학생 대표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개선책만을 기사에 담았습니다.


 이번주 대학 기획인 ‘학내 게시판’에도 비슷한 고민이 묻어났습니다. 중대신문은 이번 기사를 통해 게시판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도적 개선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방호원과 행정실 직원 등 게시판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은 “기간이 지난 게시물은 붙인 사람들이 떼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부착자에게 게시물 철거 책임이 있다니. 취재 과정에서 안 사실입니다. 실제로 94년도에 제정된 학칙엔 ‘게시기간이 끝난 홍보물은 행사 주관단체의 대표학생 혹은 부착자가 필히 철거하여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젠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 된 것입니다. 


 물론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관리 규정과 난립하는 외부광고가 게시판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몰아내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부착했던 게시물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학생들도 ‘빈틈 없는’ 게시판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의식 개선. 떠올리기 가장 쉬운 해결책이면서 실현 가능성이 가장 낮은 방안입니다. 아무리 “참여를 부탁한다”혹은 “이렇게 해달라”고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의식 개선이 쉬운 일이었다면 학생지원처에서 흡연 구역을 별도로 지정할 일도 없었을 테고, 학생회관 관리 규정이 신설될 일도 없었을 겁니다. 지난해 총학생회가 ‘클린 캠퍼스’ 캠페인을 실시하며 ‘인사 잘하기’와 ‘깨끗한 캠퍼스 만들기’를 강조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영화 <부당거래>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동안 이곳 저곳에서 뿜어지는 담배 연기를 맡던 학생들과 쓰레기를 줍고 게시판을 정리하는 방호원·미화원 분들 덕에 수많은 학생들이 ‘공짜 권리’를 누려 왔습니다. 공짜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옛 말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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