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불도 다시 보자. 자나 깨나 불조심과 함께 화재예방 표어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유명한 문구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가을날, 저의 은사님께선 학교 곳곳에 걸려있던 빨간색 문구를 가리키며 “아차 하는 순간 커지는게 불”이라며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발을 비비며 불을 끄는 시늉을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매년 가을이면 심심치 않게 산불과 관련된 뉴스가 보도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산불은 산행객들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다고 합니다. 고의적인 방화나 불장난, 낙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하네요. 제대로 끄지 않은 담배나 취사 행위 후 남은 불씨 등 미흡한 사후조치가 산 전체를 태워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이런 부주의 덕분에 1940년대 처음 등장한 ‘꺼진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의 유통기한은 70여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굳이 산불이 아니더라도 사후조치의 필요성은 쉽게 절감할 수 있습니다. 지킬 생각도 없는 약속을 남발하거나 어설프게 지키는 시늉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애초에 하지 않는 것 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뢰는 신뢰대로 잃어버리고, 욕은 욕대로 먹으니까요.
 
 얼마 전 중대신문 지난호를 살펴보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문제시되는 사안에 대해 ‘앞으론 개선하겠다’고 말한 학내 구성원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부터 ‘뉴스A/S’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후속보도 기사의 비율을 크게 늘린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입니다. 우선 저부터 도대체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지,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지 궁금했으니까요.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반 정도만 지켜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 뉴스A/S 코너에 등장한 안성캠 인복위의 경우 불가피한 사정으로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지만, 지난 학기 지면에 실렸던 많은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저희가 만난 취재원들이 뒤늦게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정말 괜찮아지겠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꺼진 불씨를 왜 불을 지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다시 봐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신문 기자들은 오늘도 열심히 꺼진 불씨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덜 꺼진 불씨를 찾아 끄는 수고는 잠시뿐이지만, 조그만 불씨가 다시 타올라 더 큰 불이 됐을때의 피해는 잠깐의 수고론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학보사 기자라는 신분이 불씨를 가까이서 살펴보기에 아주 좋은 위치라는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보는 본부 관계자들과 학생 대표자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때 그건 잘 되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은 일이니까요.
 
 당분간 학내 불씨를 찾아다니며 들쑤시는 일은 저희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찾아다닐 불씨가 없는 날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최소한 중앙대에선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말의 유효기간이 올해까지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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