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다. 모두들 자세를 가다듬는다. 중대신문도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뜻에서 ‘당부’를 청했다. 그렇지만 중대신문이 자각하지 못할 것으로 새롭게 첨가할 부탁이 있겠는가? 간과하게 될지도 모를 진부한 원칙을 새삼 상기시키는 것이 제대로 당부하는 일이 되리라.

 대학의 언론은 비판적이어야 한다. 모든 사안을 부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안을 깊게 읽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우리 담론이 안일한 타성을 벗어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다. 깔끔한 편집과 디자인 그리고 흥미로운 기사도 좋은 신문에 필요한 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비판의 정신을 흐린다면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다.

 사안을 깊게 읽어야 한다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지 말고 이면(裏面)까지 전문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관계자’의 한 말씀이나 홍보실의 ‘보도자료’를 받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발언들의 배경과 행간을 읽어 들추어야 하고, 마침내 사건으로 불거진 ‘구조’의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독재가 정당화되고, 자유와 효율의 이름으로 인권과 복지가 걷어챌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깊게 읽고 보도해야 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가려질 수 있는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담론을 바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할 언어의 틀을 바로 짜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개념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학은 취업을 위해서 있고 삶의 가치는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데 있다는 ‘상식’을 거듭 재생산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사명과 삶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데 필요한 참신한 어휘들을 만들어 내야하고, 그런 어휘들로 새로운 상식을 구축해야 한다. 중대신문의 건투를 빈다.

 

강태중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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