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입자 1] 우주의 근원을 설명하는 틀
  • 이현규 기자
  • 승인 2012.09.0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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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모형 : 근원으로 가는 길

 

▲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된 대형강입자충돌기(LHC)의 가속관.LHC는 힉스입자를 비롯한 물리학 연구에 사용된다.                                                                                            사진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

<힉스입자>

글 싣는 순서

1. 표준모형 : 근원으로 가는 길 - 입자물리학과 힉스입자
2. 힉스입자의 발견과 과학적 의의
3. 발견 이후의 연구과제
 
이십대 그 즈음에, 경허스님의 일대기인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읽었다. 비록 소설이었으나, 불교에 대해 아는 바 없었던 나에게 호기심을 품게 만든 동기를 제공했다. 부처가 됨은 최종적으로 우주에 대한 깨달음을 터득하는 것이라 했다. 보리란 수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깨닫는 우주의 참모습이요, 이를 부처가 제자들에게 설파한 것이 화엄경이란다. 수행을 하여 우주의 섭리를 깨닫고 터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하는 물리학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우주가 그 우주인지, 그 깨달음이 그 깨달음인지, 깨달은 자가 있다면 묻고 싶지만, 깨달음을 얻은 자 이미 부처가 되었다. 카프카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에서 ‘아바탐사카(화엄)의 중심주제는 모든 사물과 사건의 통일과 상호작용’이고, ‘이 개념은 동양적 우주관의 핵심인 동시에 현대물리학에 나타나는 우주관의 기본요소’라고 쓰고 있다. 
 
인간과 우주의 존재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우리의 본성일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런 의문을 ‘근본적인 문제’라고 한다. 종교가 같은 질문에 답을 얻고자 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기에 위와 같은 비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종교와 과학의 시비를 다투는 비교는 불가능하다. 과학의 가치는,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했느냐, 인류의 조상이 시조새이냐-하는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검증과 반증을 반복하고 개별적 단편 지식들이 논리적 일관성으로 충돌 없이 체계적 지식을 구축하도록 하는 수정 가능한 열린 자세에 있기 때문이다. 빅뱅이든, 시조새이든, 거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과학적 사고를 지지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정의에 따라 명명된 원자(原子)는 더 이상 물질의 기본 구성입자가 아니라, 핵과 그 주변에 전자가 분포한 내부구성체의 결합이다.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라고 하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철학이 추구하던 ‘물질의 근본’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 지금까지 6가지의 쿼크(quark)와 6가지의 렙톤(lepton)이라는 입자를 발견하였다. 쿼크는 +2/3, -1/3과 같이 정수가 아닌 전하량을 가지고 있다(전자의 전하량을 -1이라 할 때). 쿼크는 각자의 성질에 따라 위(up), 매혹(charm), 꼭대기(top), 아래(down), 야릇함(strange), 바닥(bottom)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쿼크의 우리말 이름은 <최무영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따라 썼다. 쿼크의 어떤 성질이 ‘위’나 ‘아래’를 가리켜서, 또는 ‘매혹’적이거나 ‘야릇’해서 얻은 이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들의 정체성을 거시적 기존관념으로 기술하는 것이 무의미하기에 자유롭게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종류를 통칭 맛(flavor)이라고 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전하량은 전자 전하량의 정수배만 가능한데, 2/3배, 1/3배의 전하량을 가진 쿼크는 홀로 자연에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2개나 3개가 결합하여 전하량을 정수로 만들어 존재한다. 3개의 쿼크가 결합한 상태를 중입자(Baryon)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예로서, 위-위-아래의 쿼크조합을 가진 양성자가 있다. 우주의 기본입자는 ‘쿼크’이지만,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작은 단위는 양성자와 같은 중입자이다. 그 중 가장 가벼운 양성자는 핵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029년 동안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 우주의 나이가 약 140억년이니, 우주의 탄생 직후 생긴 양성자들이 우주를 돌아다니다 지구에 들어와 그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우리의 상상마저 닿지 않는 우주의 지평을 향해 수십억 년 왔듯이 계속 전진할 것이다.
 
오메가(야릇-야릇-야릇)라는 정말 야릇한 중입자가 있다. 오메가를 구성하는 야릇함 쿼크 3개가 모두 같다면, 둘 이상의 동일 입자가 같은 양자상태에 들어갈 수 없다는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위배가 된다. 오메가의 존재로부터 야릇함이 더 이상 똑같은 야릇함이 아니라, 빨간 야릇함, 파란 야릇함, 녹색 야릇함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에서, 빨갛게 또는 파랗게 보일 수 없는 쿼크의 색(color)은 세 가지 색의 혼합이 무색이 되어야 한다는 빛의 삼원색의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 그래서 양성자는 하얗다. 
 
입자물리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 말고도, 대칭성이라는 우아한 이유가 존재한다. 별도 달도 없는 밤, 망망대해 한가운데 방향을 못 잡고 표류하는 톰 행크스의 공간은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수평선너머 먼동이 트면, 대칭성은 깨지고 톰은 동서남북을 알아낸다. 동서남북은 훤해져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칭성이 깨져서 보이는 것이다. 이론물리학자들은 미시세계가 가진 대칭성을 찾는다. 엄밀히 대칭성이 숨겨놓은 입자들의 성질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미쳐있다. 쿼크의 색도 대칭성 속에 숨겨진 성질이다. 우리는 하얀 양성자만 보고, 그 안에 세 개의 쿼크 중에 어느 것이 빨간지, 파란지, 녹색인지 알 수 가 없다. 이 색 대칭이 깨져야 색을 볼 것인데, 자연에서 가장 견고한 것이 색 대칭이다. 사실 궁금하지 않은가? 색 대칭이 깨진다면, 색맹이면서 색이라 부르던 것이 여전히 색일지, 색의 탈을 쓴 다른 정체성이 드러날지 말이다. 상상이 가능하다면, 물리 때문에 오덕후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기본 상호작용은 네 가지로서,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 있는데, 중력을 제외한 세 가지 힘을 설명하는 이론을 표준모형이라고 한다. 쿼크는 ‘색’ 때문에 강력을, ‘전하’ 때문에 전자기력을, ‘약전하’(약한 아이소스핀)라고 하는 성질 때문에 약력을 받는다. 이 세 가지 힘은 각각의 힘을 주고받는 대상들을 묶는 내부대칭성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색 대칭성이 바로 강력의 내부대칭성이다. 게이지대칭성이라고도 하는 이 대칭성 때문에 ‘힘’이라는 표현 대신, 상호작용도 ‘입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자기력은 광자(γ), 강력은 글루온(g), 약력은 W±, Z보존이라는 입자들이 전달한다.
 
표준모형이라는 모델은 자연이 숨겨놓은 대칭성을 잘 찾아내어 상호작용을 산뜻하게 설명한다. 물질의 근본도 아니고, 힘의 근본도 아닌 기본입자가 하나 있는데, ‘힉스’이다. 힉스는 약력을 느끼는 입자인데, 힉스가 대칭성을 포기하고 안정된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힉스메커니즘이라고 한다. 힉스 때문에 약력의 대칭성이 깨졌고, 대칭성이 깨지니 보이게 된 입자의 성질이 있으니, 바로 질량이다. 
 
표준모형은 실험에 의해 상당히 정확한 수준으로 검증되었고, 올해 힉스의 발견으로 모델의 표준성이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표준모형이 궁극적인 이론은 아니다. ‘표준’의 의미는, 더 근본적인 우주의 본질을 캐내려 할 때 거쳐 가야 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당신이 우주의 본질에 대해 화두 하나 품고 있다면, 표준모형의 틀에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들어줄 것이다.
 
김시연 교수
(중앙대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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