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라도 늦으면 강의실 문이 닫힌다
  • 송민정,김혜원 기자
  • 승인 2012.09.01 2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조건 장바구니를 눌러야 돼.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장이야.”

프롤로그
핸드폰 알림벨이 울리고 액정 위에 ‘8월 13일 수강신청이다’라는 글자가 보인다. 수강신청 패배의 부작용으로 지난 학기를 고달프게 보낸 학생들은 바로 오늘을 기다렸다. 연장전인 수강정정 기간까지 게임을 질질 끌지 않기 위해서 오늘 반드시 수강신청대란에서 승리해야 한다. 결의에 찬 각오로 수강신청에 임하는 선수들과 그 뒤에서 게임의 룰을 만드는 전산정보센터의 모습을 지금 바로 살펴보자.

S#1 수강신청 전날 루이스홀

▲ ① 수강신청 전날 대기표를 받기 위해 루이스홀에서 기다리는 학생들


 

 

 

 

 

 

 

 

 

 

▲ ② 학생회 임원들이 수강신청날 쓰일 대기표를 만들고 있다.

 

 

 

 

 

 

 

 

 

 

12시 30분.
빗방울이 흐르는 축축한 우산을 손에 쥔 여학생이 루이스홀 대강당의 문을 연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수강신청만 남겨 둔 4학년 여학생은 누구보다 수강신청 성공이 간절하다. 곧이어 영어단어장을 손에 든 남학생이 대강당 안으로 들어온다. 밖은 여전히 여름 장마가 한창이다.
4시가 되자 학생회 임원들이 정사각형의 핑크색 종이를 손에 들고 루이스홀로 들어 온다. 임원들이 루이스홀에 있는 학생들에게 ‘카우v’가 새겨진 대기표를 들어 보이며 내일 있을 수강신청 컴퓨터실 자리 배석에 대해 설명한다.
“법학관 컴퓨터실 자리부터 먼저 배치합니다. 내일 표 가져오신 분만 입장할 수 있으니 꼭 챙겨 오시고요.”
대기표를 받기 위해 자취방에서 급하게 나왔다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학생도 보인다. 꿀 같은 방학 기간 동안 텅 비어있던 루이스홀 객석이 수강신청 전야제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가득찬다.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학생들과 영어단어장을 손에 들고 토익공부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 그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학생들 모두가 내일 있을 수강신청 좌석 대기표를 기다린다.
5시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대기표 발급이 시작된다. 입학 후 첫 수강신청을 하게 된 1학년 여학생이 인기 교양과목인 ‘결혼과 가족’의 성공적인 수강신청을 다짐하며 강당을 빠져나간다. 내일 있을 수강신청 디데이를 고대하는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S#2 수강신청 당일 컴퓨터실
“대기표 없으신 분은 입장이 불가합니다”
무전기를 든 학생회 임원이 대기표를 소지하지 않은 학생의 출입을 저지한다. 이날만큼은 ‘정숙’문구가 붙어있는 컴퓨터실도 사적인 대화가 허용된다.
“아 떨려 이제 3분 남았어. 어떡해.”
다리를 달달 떨며 한 남학생이 말한다. 모두들 수강신청 서버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time.navyism.com)와 수강신청 페이지를 함께 모니터에 띄워놓고 번갈아 열어본다. 단단히 준비했음에도 여전히 불안한지 장바구니 목록에 들어가 다시 한번 자기가 클릭해야 할 과목들을 확인한다.
“으악! 58분이다. 이제 좀 있으면 수강신청버튼 눌러야 해.”
“아니야. 무조건 ‘장바구니목록’버튼을 눌러야 실패를 안 해.”
진정한 무림고수는 칼을 여러 번 휘두르지 않고 단칼에 승부를 낸다. 진정한 수강신청의 고수들은 10시가 되기 전에 섣불리 수강신청 페이지를 기웃거리지 않는다. 2학기의 운명을 결정지을 10시의 종이 울리는 순간 냉철하고 빠른 손길로 ‘신청’을 누를 뿐. 찰나의 클릭. 그것이 승패를 좌우한다.
“1분 밖에 안 남았어”
이제 곧 1초의 승부가 시작된다. 자칫 서두르다 “수강신청기간이 아닙니다”라는 페이지가 나오면 끝장이다. 서두르되 너무 급하면 안 되고 냉철하되 느긋하면 안 된다.
“10시다!”
지금이다. 자칫 방심하면 수강신청에 실패할 수 있다. 지금의 출발이 길고 긴 한 학기 마라톤의 코스를 결정한다. 험난한 길이 될 것인가 쉬운 길이 될 것인가는 이 순간에 달려있다. ‘장바구니목록’ 위에 멈춰있던 마우스 커서를 누른다. 누군가는 성공해 쾌재를 부르고, 반사 신경속도가 2432등 정도 되는 누군가는 좌절한다. 그의 모니터엔 ‘현재 작업을 처리하는데 다수의 대기자가 있습니다’라는 메시지 창이 뜬다. 성공한 이들의 환호성이 들리자 점점 식은땀이 흐르며 내가 들어가야 할 강의실의 문은 닫혀버렸음을 깨닫는다.
고작 3분 만에 희비가 명백하게 갈린다. 승자들은 자유롭게 자리를 이동하며 친구의 화면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패자들의 화면엔 ‘수강인원을 초과하여 수강신청을 할 수 없습니다’란 메시지 창이 뜬다. 수강신청에 실패한 이들은 승자들이 그 과목을 취소하기를 엿보거나 대체 가능한 과목을 찾아보지만 이미 끝난 게임이다.
수강신청 시간이 30분쯤 지나자 컴퓨터실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수강신청을 완료하지 못한 패자도 ‘정정기간에 주워 담아야지’하며 단념하고 자리를 떴다. 정적만이 남은 컴퓨터실. 정리 안 된 의자들과 구겨진 카우v의 대기표만이 남았다.

S#3 전산정보센터

▲ ③ 수강신청이 이뤄지는 동안 실시간으로 중앙인 사이트 및 서버를 체크하는 전산정보센터 직원들

 

 

 

 

 

 

 

 

 

 

학생들이 1초를 앞다퉈 수강신청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 순간. 전산정보센터의 직원들도 컴퓨터 앞에 앉아 수강신청을 준비한다. 수강신청날에는 내부직원들 뿐만 아니라 외부 업체 직원들까지 전산정보센터로 모인다. 한쪽에서는 중앙인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수강신청과 관련된 항의글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항의전화나 항의글이 올라오는 즉시 전산정보센터의 모든 직원들에게 전달된다. 혹시 일어날지 모를 문제를 막기 위해 직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분 전입니다.”
칸막이 너머에서 수강신청 1분 전을 알리는 직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제발 이번만 잘 넘기자”
마침내 수강신청을 알리는 카운트가 시작된다. 제로와 동시에 여자 직원이 소리친다.
“500까지 몰렸어요.”
“400까지 떨어뜨려.”
전산정보센터의 사무 책상을 나누는 칸막이가 있으나 마나 했다.
서로 소리내서 수강신청의 상황을 보고하기 바쁘다. 스크린에는 학생들의 수강신청 서버 모니터링을 위한 프로그램 화면이 띄어져 있다. 수강신청 접속자 수와 서버 반응 속도 등이 그래프로 나타난다. 또 다른 직원은 대기자 수를 체크해 바로바로 전달한다.
“글 올라오는 거 있어?”
항의전화로 빗발칠 것으로 예상했던 전산정보센터의 풍경은 예상 외로 평화롭다. 이번 수강신청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10분만 넘기자.”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강신청 인원이 최고조로 몰리는 시간은 10분까지라고 한다. 그 이후에는 접속자 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수강신청 페이지 이용자도 게임 등의 이용자로 바뀐다.
“처음 접속자 수 중에 4분의 1정도 빠져나갔어요.”라고 누군가 말한다.
‘한시름 놨다’고 말하면서도 “전화오는 거 없지?”라고 또 한 번 확인한다.
“수고했어”
10분을 넘기자 여기저기서 수강신청에 힘쓴 직원들을 위한 격려의 말이 오간다. 수강신청 디데이를 가슴 졸이며 기다린 전산정보센터 직원이 말한다,
“어제 팀장님이 나한테 그러더라. 부처님 공자님 알라신님 부탁드립니다. 잘 넘어가게 해주세요.”
그렇게 모두 수강신청 디데이를 넘겼다.
글·사진 송민정 기자 mj@cauon.net,
김혜원 기자 hye12@cauon.net


CUT
학교에서 수강신청하면 더 빠르다?
학교 서버와 연결된 컴퓨터로 수강신청을 하면 학교 밖에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빨리 수강신청이 된다는 속설이 있다. PC클리닉과 전산정보센터 직원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학교에서 하는 수강신청은 전산정보센터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서버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하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강신청을 하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버에 과부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하는 수강신청과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수강신청날에 수강신청 페이지 메인 화면이 간소화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결론은 학교에서 하는 수강신청이 더 빠르다고 확언할 수 없다. 선택은 본인 몫이다.


NG
취재기자의 수강신청은?
수강신청날은 취재를 담당한 기자들의 디데이기도 했다. 다른 학우들이 수강신청을 하고 있을 그 시각 두 기자는 수강신청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대신 장바구니에 담겨진 과목들에게는 안녕을 고했다. 두 기자들의 시간표는 또다시 남들이 버린 과목들로 채워지며 다음 학기의 암울한 서막을 알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