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내에서 테이크아웃 한 커피를 들고 다니는 학생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인지 교내에도 커피숍이 점차 늘고 있다. 의학관, R&D센터, 기숙사 등. 물론 학생들의 수요나 필요에 따라서 커피숍이 교내까지 들어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커피숍이 교내에 있기에 학생들이 커피를 더 자주 마시게 되는지도 모른다.

  유명 패스트푸드점도 교정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학생들이 점심 혹은 저녁에 이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 눈에 쉽게 띄고 교내에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다면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자주 패스트푸드를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라는 말이 떠올랐다.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 등이 저술한 『넛지(Nudge)』라는 책에서 소개되고 있듯이, 인간의 행동은 스스로의 의지보다 정황이나 맥락에 의해서 매우 쉽게 영향을 받는다. 바로 이러한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이 선택 설계자가 되는 셈이다. 예컨대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냉장고문을 열어 손쉽게 집을 수 있는 곳에는 우유를 놓아두고, 기타 과즙음료는 서랍에 넣어두고, 탄산음료는 냉장고에 아예 두지 않는 주부가 있다면 그 주부는 훌륭한 선택 설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가 아닌 성인들은 주변의 환경이나 정황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까? 뷔페식당을 가면 나열된 음식의 순서가 동일하다는 것을 느낀다. 야채 및 샐러드가 먼저 놓여있고, 다음에 열이 가해지지 않은 찬 음식, 그 다음에 따뜻한 음식이 놓여 있다. 물론 국과 같은 수분이 많은 것은 더 나중에 놓여 있다.

  서구인들의 사고에서 시작된 이 배열은 야채를 통해서 위의 운동을 자극하고, 이후 육류를 섭취하면서 소화를 도우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뜻한 국물, 그리고 열기가 가해진 따뜻한 음식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처음부터 찬 샐러드를 먹는 것은 소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순서를 어겨가면서 음식을 담거나 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 훌륭한 선택 설계자인 호텔지배인이나 영양사가 있었다면 이러한 순서에 변화를 주었을 것이다.

  대학 내에서는 특정 맥락에 영향을 받을 만한 일이 없는 것일까? 만일 있다면, 학생들과 교수에게 좀 더 바람직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하는 지혜로운 ‘선택 설계’라는 것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었으면 좋겠다. 중앙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대형 도서관이 교내의 중앙에 하나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건물마다 작은 도서관이 있다면 더 쉽게 들리지 않았을까? 강의동 혹은 교수연구동마다 휴게실이 있었다면 누구든 쉽게 방문하여, 서로 다른 전공의 교수와 학생들이 더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풍토가 생기지 않았을까? 또한 강의실의 의자들이 정면을 바라보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대학원 세미나실처럼 학생들끼리 서로 표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면 졸지 않고 수업에 더 집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더 쉽게 발표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김재휘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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