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생의 속사정

▲ 지난 8일, 유현도씨가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중앙대 연극학과이기에
같은 실수를 해도
더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서구적인 얼굴에 큰 키,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유현도씨(연극학과 3)는 확실히 흔한 일반인의 외모가 아니었다.
-과에도 외모가 준수한 학생들이 많을 텐데, 잘생기고 예쁜 애들이 할 것이 없어서 연기한다는 말을 듣지 않나.
“우리에게 ‘날라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연극학과에 와서 정말 노는 사람도 있고 운 좋게 들어온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 나름의 고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대부분은 연기에 뜻이 있어 온 사람들이다. 실상은 다른 과보다 일정도 훨씬 빡빡하고 외부활동도 잘 하지 못한다.”
-연기 분야는 어떻게 되나.
“연극, 뮤지컬,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연기로 나뉜다. 뮤지컬은 일단 노래를 잘 불러야 할 수 있다.(웃음) 연극이랑 뮤지컬은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온몸으로 다 연기해야하고 몸짓도 과장돼야 한다. 반면 영화 연기는 표정이 섬세해야 한다. 얼굴만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요즘은 어떤 분야를 많이 선호하나.
“연극은 인기가 없다. 극단에 들어가면 돈도 거의 받지 못하면서 최소 십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많이 가려 한다. 고학년이 되면 단편영화 오디션이나 기획사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닌다.”
-외부 오디션을 보는 것에 대해 학교에선 어떻게 생각하나.
“저학년들이 오디션 보러 다닌다고 하면 학교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수영장에서 수영만 하던 애가 바다에 나가 수영하는 꼴’이라고 표현한다. 학교에서 아직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 부족한 실력으로 오디션을 봤다 떨어지면 학교 이름에 먹칠하게 되는 거니까. ‘중대 많이 기울었네’ 이런 소리 듣지 않도록 교수님들이 말리시는 편이다.”
-중앙대 연극학과라고 하면 외부에서 인정해주지 않나.
“되려 조심한다. 우리에게는 평가가 더 박하기 때문이다. ‘중대생인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라고 한다. 예를 들어 별로 유명하지 않은 대학의 연기 전공 학생들은 똑같은 실력으로 연기해도 우리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똑같이 실수를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쟤네는 중대 출신인데 저래?’라고 말한다.”
-커리큘럼은 어떻게 짜여 있나.
“1, 2학년 때는 주로 깨지는 연기를 많이 한다. 3, 4학년이 되서야 감각적인 연기를 배운다. 예를 들어 짜여진 대본 없이 가면만 쓴 상태로 ‘서로의 몸에 반응하며 움직여라’는 주문에 맞게 즉흥적인 연기를 배운다.”
-앞서 말한 ‘깨진다’는 표현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데.
“망가진다는 뜻이다. 연기자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릴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1학년 때 다양한 연기를 하며 충분히 깨지는 연습을 한다. 그래서 보통 1년 정도 지나면 서로 못 볼 꼴 다 보게 된다.(웃음)”
-학과 자체에서 만든 연극이 활발하다고 들었다.
“제작실습이라고 해서 학생이 제작하는 연극과 교수님이 연출하는 뮤지컬 등이 있다. 학교에서 하는 것은 무조건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낸다. 영화학과의 단편 영화 촬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매년 연극학과가 영화학과에 학생들의 프로필을 보내면 그쪽에서 캐스팅을 한다. 역할은 연출부에서 정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특정 배역을 원할 수도 없고 거부를 하지도 않는다.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해보자는 식이다.”
-학기 중에 연극을 하면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학기 중에 하는 연극은 방학 때 하는 연극에 비해 규모가 커 부담을 많이 느낀다. 수업을 병행하면서 해야 하기도 하고. 보통 학기 중엔 수업 끝나고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연습한다. 연극 막바지에 가면 새벽 2, 3시까지 한다. 아침까지 연습하고 바로 수업에 가는 경우도 있고.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연습 도중 힘들어서 슬럼프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다.”
-연극 들어갈 때 외모 관리도 중요할 것 같은데.
“평소에도 늘 관리한다. 운동도 많이 하고 우리끼리 술은 조금만 마시자고 정하기도 한다. 물론 연극 막바지에는 체력이 달려서 많이 먹지만.(웃음) 이미지를 바꾸려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도 꽤 있다. 대놓고 ‘나 어디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연극학과 중 중앙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투톱이라 들었다. 두 학교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던데.
“한예종은 위계질서가 없다.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편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엄한 편이다. 특히 갓 입학했을 때 가장 심하게 군기를 잡는다. 그래서 처음에 과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워낙 각자 개성이 뚜렷해서. 처음부터 엄격한 분위기를 피하려고 오랫동안 휴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굳이 군기를 잡을 필요가 있나.
“일학년 때 선배들이 무작정 무섭게 하니까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알 것 같다. 사람간의 기본 예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졸업 후 인맥이 계속 이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 문제다. 무대는 위험한 곳이다. 조명이 떨어질 수도 있고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대 작업할 때 하늘하늘하거나 거추장한 옷을 입으면 무대장비에 걸려서 다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반지나 팔찌 같은 장신구를 절대 못하게 하고 청바지나 추리닝만 입게 한다.”
-극단에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나.
“인맥이나 오디션을 통해 들어간다. 극단 대표가 특정 학교의 연기 스타일을 선호해 학벌이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인정받는 건 개인의 능력이다.”
-극단에 들어간다 해도 월급은 거의 받지 못하는 걸로 안다.
“그렇다. 극단에 들어갈 때는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극단이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교수님들도 투잡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선배들이 촬영 현장에서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가르쳐준다. 조명 비추는 법 등 촬영기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기본적인 영상편집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알려준다. 선배들이 돈 5만원 정도 주고 ‘편집 좀 해달라’고 할 때 해줄 수 있는 수준으로.”
-극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무엇을 하나.
“들어갈 때까지 계속 도전하거나 단편 영화나 프로젝트 공연의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요즘은 소속사 오디션을 선호한다. 소속사에 들어가면 단역을 따내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단역도 스펙이다.”
-요즘 아이돌이 연극 주연을 맡기도 하는데 연극학과 출신 배우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건 아닌가.
“한두 자리이기 때문에 자리를 뺏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또 아이돌들이 출연료가 매우 비싸 제작비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캐스팅을 해 봤자 몇 자리 안 된다.(웃음)”
-연예인 동기들이나 갑자기 유명해진 동기를 보면 흔들리는 건 없나.
“연예인 동기들 같은 경우 우리와 애초에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축되는 건 없다. 어떻게 보면 그 친구들이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준비했다. 입학전형도 다르다. 그래서 오히려 우린 연예인들이 운 좋게 과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롤모델이 있나.
“이순재 선생님. 연세가 많으신 데도 아직까지 연극 무대에 선다는 게 대단하다. 연극은 호흡이 길기 때문에 어린 나도 한 연극을 시작하면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다. 실제로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고2때 우연히 본 이순재 선생님의 연기 때문이다. 이순재 선생님과 홍경인씨가 주연한 ‘life in the theater’라는 연극인데 선배 배우와 후배 배우의 삶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때 딱 나도 이순재 선생님처럼 누군가 훗날 내 연기를 보고 ‘아 연극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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