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사라진 자리
차지한 소비대중문화 탐욕
냉철한 분석으로 출구역할 담당

 

▲ 강내희 교수 자택 내부의 편집실에 『문화/과학』이 쌓여 있다. 이영준 기자


  2012년 여름호(70호)로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계간 『문화/과학』은 ‘문화이론전문지’를 표방한다. ‘문화이론’이라는 한국사회에서는 낯선 영역을 개척한 이래 긴 세월 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놀랍고 반갑다. 왜냐하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수많은 잡지들은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새얼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황해문화』 정도이다. 그에 비하면 『문화/과학』은 발행인(강내희 교수)과 편집위원들의 열정으로 일궈낸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문화/과학』의 창간 시기는 과거와 단절이 일어나고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던 때였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던 이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뒤이은 신세대의 등장과 대중문화의 발흥은 또다른 혼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현실 부정이나 백기 투항의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소비대중문화는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을 보여주었으며,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문화/과학』은 바로 그러한 현실에서 패배와 절망 가운데 이데올로기만을 고수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새로운 소비대중문화의 품에 안겨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의 모습도 아니었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문제의식을 드러냄으로써 답답한 현실에 목말라하던 이들에게 일종의 출구 역할을 한 것이었다.
 

  『문화/과학』이 이처럼 새로운 담론의 장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와 ‘비판적 문화연구’의 긴장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자본주의는 특정 시기마다 변형을 거듭하면서 진화해왔다. 그것은 자본의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자본의 작동방식, 그리고 대중의 변화, 정확하게는 욕망의 변화를 이끌어온 것이다. 결국 맑스 이후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맑스주의적 문제설정에만 고착화된 이들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유연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면이 있었다. 1990년대 한국사회처럼 경제적 사고틀만으로는 분석하기 힘든 국면에서 현실 사회의 분석과 대안 담론의 생산이라는 시대적 역할을 해낸 것은 이데올로기와 욕망(문화)의 절합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에는 맑스주의적 방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들, 즉 육체와 공간, 욕망, 주체, 언어 등을 다루면서 새로운 이론적 문제설정으로 자본주의사회를 분석하는 통로 역할을 한 셈이다.
 

  이러한 『문화/과학』의 문제의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매우 ‘이론적’이고 ‘실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유입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무비판적인 수입이 아니라 비판적 수용을 시도했으며, 그러한 입장은 새로운 이론의 생산과 절합을 통해 이론이 구체적인 현실 속으로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인가를 역사적 국면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고민했다. 『문화/과학』의 문제의식은 문화이론과 문화연구, 문화정책, 문화운동의 절합이었다. 이는 과거 1980년대 이전의 한국사회 문화운동의 특이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물질적 조건에 걸맞은 문화운동론을 펼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1999년 <문화연대>라는 문화운동시민단체가 창립하게 되었다. <문화연대>는 지금까지 2000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체제의 광풍에도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저항과 대안의 공간을 창출하는 데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문화연대>를 창립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이후 지속적인 활동 전반에 이르기까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상당수가 결합하고 있는 것은 이론적 문제의식이 단지 지식인의 허세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2000년대 중반 마포 지역에 생활공동체를 표방하는 <민중의 집>을 출범시킨 것 또한 『문화/과학』의 실천적 운동의 일환이었다.
 

  『문화/과학』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분명한 것은 창간 당시의 문제의식은 그대로 간직할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과학』의 향후 모색은 20주년 기념호에 실린 이동연 신임 편집인의 글 “『문화/과학』의 이론적 실천과 문화운동의 궤적들”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하나는 두 문화의 만남, 즉 과학기술과 문화의 절합을 더욱 심화시켜가는 것이다. 향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과학과 기술을 통한 인공지능의 지배 등을 예측한다면, 이 영역이 인간 사회와 문화에 미칠 영향력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지적 실천은 결국 과학기술운동과 문화운동의 만남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수자의 주체형성에 대한 연구이다. 다양한 소수자 주체형성에 관한 이론적 검토와 더불어 새로운 소수자운동의 이론적 구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그 중 하나로 복합적 소수자 주체성을 갖는 청년세대와의 다양한 연대, 나아가 청년문화에 대한 ‘이론-운동’의 기획을 만들어갈 것이다. 문화운동의 현장성을 바탕으로 이론-실천의 상호작용을 통해 신자유주의체제에서 나타나는 공황과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문화/과학』의 중요한 임무가 될 것이다.
 

  역사는 수많은 시도의 연속이다. 그 시도가 유의미하고 지속적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현실 분석을 통한 독자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 앞으로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어쩌면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라 하더라도 그 사회체제가 인간의 삶과 문화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문화/과학』의 문제제기와 비판은 지속될 것이다. 21세기의 현실은 과거보다 훨씬 더 역동적일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정세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체제는 특정 국면이나 사회, 영역을 파괴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제 싸움은 그야말로 ‘전면전’이다. 삶을 구성하는 전 영역을 가로지르는 싸움은 추상적이고 개별적이고 비가시적인 공격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집단적이고 전면적인 저항으로 맞서야 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화/과학』이 이론적 좌표를 놓는 역할은 지난 20년보다도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권경우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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