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생의 속사정

▲ 지난 21일 유종윤씨가 플라스틱으로 작품의 틀을 만들고 있다.

"최소 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 수 있다"


조소과 건물 앞엔 작품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유종윤씨(조소학과 3)가 그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걸어 나왔다.  
-조소과 건물 앞에서 큰 철제 원에 고장난 TV, 폐자전거 등 쓰레기가 붙어 있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작품도 조소가 될 수 있나.
“조소에선 모든 게 다 재료다. 나무나 돌, 하다못해 전구까지 재료가 될 수 있다. 쓰레기를 주워다가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재료의 범위가 넓은 만큼 선택이 어려울 것 같다.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해야 한다. 재료를 그냥 보는 것과 만들어서 보는 것은 또 다르다. 그래서 교수님들이 ‘일단 만들어 보라’고 말씀하신다. 다양한 재료를 다뤄보고 그 재료가 어떤 느낌을 나타내는지 알아야 한다. 1, 2학년 때 여러 재료를 다루면서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는데 그때 감을 익히게 된다.”
-조소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보면 되나.
“조소는 조각과 소조를 합한 미술이다. 재료를 깎는 조각과 붙여서 형을 만드는 소조는 다 조소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공공미술도 조소에 포함된다. 조소과가 어떻게 보면 미대에서 예술의 범위가 가장 넓다. 드로잉은 기본이고 페인트칠까지 하니까. 우리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를 다룬다.”
-그럼 공예학과랑 다른점이 뭔가.
“예를들어 공예는 가구를 만들 때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지와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신경쓴다면 조소는 가구에 담긴 ‘의미’가 더 중요하다. 조소과의 작업은 우리가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지에서 시작된다.”
-주재료가 돌, 철 등이라 작업 공간이 위험하지 않나.
“모든 작업이 위험하다. 용접을 할 때도 반팔을 입으면 살이 다 타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흔히 ‘아다리’ 걸린다고 한다.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거다. 옆에서 용접하는 것을 구경만 했는데 걸리는 애들도 가끔 있다. 사포질을 하다 손이 나갈 뻔 하기도 하고.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작업도 위험하다.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경화제라는 독극물을 사용하는데 잘못해서 경화제가 손에 닿으면 바로 살이 탄다. 경화제를 젓다 눈에 튀어 응급실에 실려 간 선배님도 있었다. 작업공간도 안전하지 않아 우린 절대 슬리퍼를 신지 않는다. 언제든지 무거운 돌이나 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학교는 아직까지 큰 사고가 난 적은 없다고 들었다.”
-‘강철조소’라고 불리던데 작업이 거친 것과 관련이 있나.
“매일 야외 공터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는 모습만 보여지다보니 타과생들 눈엔 드세보일 거다. 그런 부분도 없지않아 있다. 돌이나 철을 들면 팔에 근육도 생기니까 힘도 세진다. 예전엔 우리과 선배들이 공구를 들고가서 체대랑 싸우기도 했다고 들었다.(웃음) 여학생들도 남자들처럼 조금 거칠어진다. 그래서 여자애들이 구두를 신거나 화장을 하고 오면 ‘너 오늘 서울가냐’고 놀린다.(웃음)”
-위계질서도 셀 것 같은데.
“선후배 서열이 엄격하다. 선배들이 작품 하나 들어갈 때 후배들에게 도움을 자주 요청한다. 속된말로 ‘시다 뛰어준다’고 하는데 선배가 하라고 하면 후배는 군말 없이 다 해줘야 한다. 이 바닥이 좁기 때문에 졸업 후 작업할 때도 한 다리 걸쳐 다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조소 작품은 부피가 커 소장하기 힘들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부분이 한계로 작용한다. 외국은 집이 크고 마당도 있어 입체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의 아파트에 거주해 둘 곳이 없어 조소 작품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리고 작품이 크다보니 전시가 끝나고 하나를 옮길 때도 크레인이 필요하다. 그것도 거의 사비로 나가고.(웃음)”
-사비가 많이 나가나보다. 재료비도 본인이 부담하나.
“한 작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모든 재료비는 다 개인부담이다. 작품을 옮기는 비용까지. 학교에서 지원하는 재료비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돈을 벌기위해 휴학하는 애들도 많다. 재료비가 없으면 작품을 아예 만들 수가 없으니까. 이 정도의 지원이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선 재료비 지원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으면 한다.”
-예대생들도 취업준비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한 학년에 서른 명 정도 있다고 하면 그 중에 두세 명만 작가를 생각한다. 최소 십 년이라는 세월은 지나야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이 일을 정말 즐기고 궁핍함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만 할 수 있다. 나머지는 다 취업준비를 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군지 묻는 질문에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조각가 최수앙작가가 ‘ The One’이라는 주제로 만든 작품 사진들을 보여 줬다.
-왜 최수앙 작가가 좋나.
“최수앙 작가의 작품을 보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난 보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의미를 잘 전달해 주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과 소통하는 작품, 말보다 눈으로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작품 말이다.”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나.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것. 예를 들어 누가봐도 유리로 된 것 같은데 실제로 만져보면 유리가 아니라 스펀지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
-졸업 후엔 뭘 할 건가.
“물론 작가가 되고 싶다. 주변에서 생계걱정을 많이 하지만 아직은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아닌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웃음) 지금은 내가 해야할 것, 작품 활동에 더 집중할 때다.”


김해인 기자 cauhaein@cauon.net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