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런 줄 알았다. 내 친구의 책꽂이도 나와 같을 줄 알았다. 베스트셀러라서 샀던 철 지난 소설책과 지난 학기에 무겁게 들고 다닌 두꺼운 전공 교재. 열심히 한 게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수능문제집. 기자의 부끄러운 책꽂이다. 하지만 내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내 친구의 서재’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자는 학술보도면에 ‘내 친구의 서재’라는 연재기사를 담당하고 있다. 한 명의 학우를 만나 그가 선정한 추천도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을 소개하는 꼭지다. 추천인을 고르고 골라 어렵게 만나면 첫번째 질문을 던진다. “어떤 계기로 책을 접하셨나요.” 답변의 세세한 점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일관된 맥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한 추천인은 작가의 매력에 꽂히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섭렵했다. 그는 책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유영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또 다른 취재원은 노동 운동, 여성 운동 등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아 그 분야의 책을 찾아 탐독했다. 다양한 시선을 접해보면서 세계를 배우고 있었다. 다른 추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책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자기만의 독서 습관이 있는 취재원들을 보며 기자는 생각했다. 나에게도 독서 습관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는지. 기자에게 책은 그저 허세 아이템에 불과했다. 

 도서관에서 마음먹고 빌린 책을 다 읽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반납한 적이 있나 돌이켜본다. 남들도 다 읽는 책이라길래 빌려봤지만 내 취향이 아니어서 읽다 말았고 우연히 만난 달콤한 자기계발서를 겨우 읽어내고 깜찍한 감동에 젖어있을 뿐이었다. 결국 독서 습관이라 내세울 만한 것은 생길리가 없었다. 

 전공 교재는 원서로 사놓고 제대로 읽어본 적이나 있었나 생각한다. 애꿎은 전자사전만 두드리다보면 어느새 무섭게 졸음이 쏟아졌다. 서평을 쓰는 학술부 기자에게 책은 이렇게 지루했다. 이런 불편한 진실 때문에 기자는 취재원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그러니 합리화는 그만하자. 언젠가 신문에서 보도된 ‘대한민국 성인 평균 독서량’이 매우 낮다는 것을 곱씹으며 몰래 안도하는 것은 이쯤에서 그만두자. 우리는 정말 책을 읽었던가. 전공 도서랍시고 ‘맨큐의 경제학’을 표지가 보이게 들고 다니지만은 않았나. 우리 한번 진짜 책 좀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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