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심 인권센터 전문연구원


인권센터에 근무하면 여학생의 상담전화만 받을 것 같지만 의외로 남학생의 상담전화를 받을 때도 많다. 자신의 여자친구 대신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신고하는 경우이다. 어떤 때는 ‘자신은 중앙대 학생도 아닌데 여자친구를 대신해서 신고한다’면서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전화를 받고 나서 참으로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남성의 뒤에 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어떤 피해자는 정확한 피해 정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말만 반복하기도 한다. 물론 정확한 피해 사실을 알려준다면 가해자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보복할까봐 두려워하는 피해자의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도 없고 자신의 피해사실도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없지만 알아서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권리’ 주장은, 사실상 너무 공허하기 때문에 무기력하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벌되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신고하는 피해자로서도 이를 성실하게 증언할 용기와 진정성 정도는 필요하다. 가해자로서도 심판대에 올라서 준엄한 판결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문제가 되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할 여지라도 생기는 것이다.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을 신고한 것 때문에 가해자로부터 협박을 당하거나 주변인으로부터 비난받는다면 인권센터에서는 기꺼이 피해자와 함께 싸워줄 수 있다. 피해자가 이 사건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인권센터에서는 성폭력 신고 사실을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갈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입을 다문다면, 인권센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종종 가해자는 피해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약한 사람일 때가 많다. 교수, 교직원, 학생회장, 학교 선배 등 가해자는 대부분 권력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피해자가 볼 때는 가해자가 거대한 힘을 가진 것 같지만, 더 넓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가해자의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ㆍ문화적 장치들이 존재한다. 사실 가해자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가해자 그 자체라기보다 가해자가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두려움, 공포일지도 모른다. 원래 공포는 그 실체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강렬한 법이다.


지금처럼 대학 내에 성폭력상담소가 생기고 반성폭력 학칙이 제정된 것은 대학 내 성폭력 만연한 문화를 지속적으로 고발했던 대학 여성주의자들에 의해 가능했다. 중앙대만 해도 2009년 성평등상담소가 개소된 것은 총여학생회를 비롯하여 학내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성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단지 성평등상담소를 개소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지속적으로 성평등한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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