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부록>

패션왕

그 남자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 남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패션테러리스트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즐겨 입는 옷은 엄마가 사다준 옷입니다. 특별한 날에는 비싼 메이커 옷 입으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그 남자에게도 나름대로 보는 눈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한껏 멋을 내고 거울 앞에 섰는데도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어색하게 만드는지 감이 안 잡혔죠. 솔직히 그 남자도 옷을 잘 입고 싶답니다. 그래서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하는 스타일 조언 프로그램도 종종 봅니다. 하지만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패션전문가들의 외계어를 못 알아들어 결국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죠. 옷을 잘 입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멋진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남자가 진정한 패션왕으로 거듭날까요? 어쩌면 당신일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 위해 핫한 패션전문가들이 전해준 패션의 정석을 공개합니다.

 

 

 

 

   머리는 일명 ‘귀두 컷’에 교복바지는 통바지. 네이버 웹툰 ‘패션왕’의 주인공 우기명군은 원래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어느 날, 일생일대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기명군은 짝사랑하는 같은 반 여학생 혜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유명 브랜드와 엇비슷한 ‘사우스페이스’ 패딩을 사 입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혜진이에게 어필하기는 커녕, 어설픈 짝퉁 브랜드를 학교에 입고 갔다가 반 친구들에게 창피를 당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핏’의 차이를. 비슷하게 입는다고 똑같은 간지를 내뿜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사우스페이스 패딩을 불태우며 기명군은 다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될 거야.”  


  멋진 남자 시켜준다는데 싫다고 할 남자는 없다. 문제는 멋진 남자가 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뭘 입어도 그림이 되는 타고난 신체조건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신체적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은 부각하는 기막힌 센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센스를 가진 이들은 소수.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은 어떻게 해야 옷을 잘 입는 건지 모른다. ‘핏’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면, 또 작은 아이템이 주는 디테일한 변화를 도무지 모르겠다면 갈 길은 더 멀다. 그래서 누군가는 오늘도 엄마가 사다 준 바지에,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티셔츠를 대충 걸쳐 입고 집을 나선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옷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패션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제이브로스 김재환 팀장은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분위기이니 남자들도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자극을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옷에 대한 남자들의 관심이 늘었다는 사실은 실제 패션시장에서도 드러난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고동휘 패션 에디터는 “한국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불과 2~3년 전과 비교해도 엄청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남성 편집 매장의 증가, 백화점의 럭셔리한 남성전용층 등이 현재 남성 패션 시장의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주변에 멋진 남자들이 늘어나니 부담도 커진다. 나름 트렌드를 쫓는다고 비싼 돈을 주고 최신 유행 브랜드의 옷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옷의 가격이 옷이 내뿜는 간지의 정도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최신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맵스매거진의 유도현 대표는 “가장 좋은 옷은 트렌디한 옷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이다. 자신의 체형, 말투, 분위기가 모두 작용해 ‘이 사람스럽다’는 말이 나올 때가 패션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으라고 말한다. 고동휘 에디터도 “브랜드나 유행에 치중하지 말고, 본인만의 스타일과 확고한 신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어떻게 찾을까. 내가 입었을 때 가장 예쁜 핏이 나오는 사이즈, 내 얼굴에 가장 잘 받는 색깔을 찾아내는데 지름길은 없다. 그저 많이 입어보고 시도해야 한다. 유도현 대표는 “일단 주변을 돌아다니며 패션을 많이 봐야 한다. 자신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닥치는 대로 입어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물며 길을 걷다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라도 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니온매거진 최승조 편집장도 “많은 스타일링을 보고, 또 고민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장단점에 대해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패션왕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비웃음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자신감도 필요하다. 고원빈씨(철학과 2)는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인다고 해도 신경쓰지 않고 입고 다닌다. 전에 초록색 바지를 입고 갔다가 ‘나무’냐고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남들이 보는 것보다 내가 좋고 마음에 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패션왕 우기명군은 이런 말을 했다. “꾸민다는 것은 놀라운 거구나. 굉장해. 마치 새로운 나를 발견한 기분이다.”
 

  옷을 못 입는 남자는 긁지 않은 복권이다. 스스로가 특별한 매력 없는 평범한 남자라고 여기고 있다면, 당신의 복권을 한번 긁어보는 것은 어떨까. 꽝일 확률은 낮다. 남자는 사실 ‘옷빨’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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