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생의 속사정

▲ 지난 8일 지휘석씨가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 '음식물과 배설물'이란 주제를 가지고 그린 작품.
누드는 인체를 이해하는
도구일 뿐 부끄러운 것 아니야

“좀 더러워요”라고 말하며 지휘석씨(서양화학과 3)는 실기실로 안내했다. 실기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실기실 곳곳에는 학생들의 캔버스들이 널려 있었다. 지휘석씨의 작품도 보였다. ‘음식물과 배설물’이라는 주제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실제와 똑같이 그린 것을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듯이 그림 역시 내 생각을 담아 소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을 ‘음식물과 배설물’로 정했다.”
-그림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지.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표현하고 싶은 것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림을 평가하는 데 일정한 기준을 가지게 되면 입시미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서양화학과는 무엇을 배우는 곳인가.
“서양화학과를 직역하면 웨스턴 페인팅이다. 웨스턴 페인팅은 미국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민속화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과랑 성격이 전혀 다르다. 서양화학과란 명칭은 단지 회화과에서 한국화, 조소, 서양화로 나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학과를 파인아트(fine art)라고 생각한다. 파인아트는 조소, 한국화, 서양화는 물론 판화와 사진, 영상도 포함하는 분야다.”
-전통적인 방식의 서양화는 배우지 않는건가.
“그것을 아카데믹하다고 한다. 원근감이나 색감, 명암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이미 1800년대에 다 나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과는 아카데믹한 것보다는 현대미술 기법을 지향한다. 현대미술이 백여 년 전의 서양 미술을 되풀이하는 것이 과연 재밌을까?”
-미대생이면 누드화도 그리지 않나.
“누드화를 그리는 수업을 ‘모델실기수업’이라고 한다. 누드를 통해 인체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다. 처음에는 다들 어색해 한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남자 모델을 낯설어 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누드화 수업시간을 갖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진다. 그림을 그릴 때는 벗은 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피사체라고 생각하고 그림에만 집중한다. 수업이 끝나면 아무렇지 않게 서로 물어본다. ‘야하지 않았지?’하면 ‘아니. 야하던데?’ 이러면서 웃어넘긴다.”
-학생들이 모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할 것 같은데.
“우리들 사이에서 유명한 모델이 있다. 왕엄마라는 별명을 가진 누드 모델이다. 중년의 여자 분이신데 포즈를 취할 때 게으르고 나태한 느낌이 들어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수업을 듣지 않은 다른 학생들도 딱 알아차린다. ‘왕엄마 왔었구나?’”
-모델 일을 전문적으로 해주시는 분이 있나.
“누드 모델 협회가 있다. 협회를 통해서 검증 받은 사람만이 누드 모델이 될 수 있다. 직업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해주시는 분도 있다. 5분 크로키 시간 때 오신 여자 모델 분께서 취한 포즈가 기억에 남는다. 야성적인 포즈를 취해달라는 강사의 요구에 다리를 엠자 모양으로 앉은 채 몸을 뒤로 젖혀 바닥에 닿게 했다. 그 후 등이 땅에 닿지 않고서 5분을 버티셨다. 보기에도 굉장히 어려운 포즈였다. 프로라고 생각했다.”
-실기 수업을 하며 느끼는 불만사항은 없는가.
“작년에 분반 기준을 40명으로 높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결국 무산되었다. 실기 수업을 40명이 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생들의 작품이 전부 제각각이기 때문에 교수님과 학생의 피드백이 중요하다. 실기 수업을 듣는 인원이 많아지면 교수님과의 일대일 지도가 한명당 10분 정도밖에 할당되지 않는다. 작년처럼 분반 기준을 변경한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된다.”
-실기 수업이 적다고 들었는데.
“선택할 수 있는 실기 수업이 점점 줄고 있다. 1학년 학생들의 수업시간표만 해도 그렇다. 공통교양이 네가지인데 정작 전공 실기 수업은 두개뿐이다. 작가를 희망해 실기 수업을 받고 싶은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공통교양이 달갑진 않다.”
-재료비가 부담되지는 않는지.
“사비로 하는 것이니까 그럴 수밖에. 재료비가 연필 한 자루 값으로 끝날 수도 있다. 우리는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위해 형식을 맞춘 것이 아니라 형식에 내용을 맞춘다. 물론 돈이 있으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학생들 대다수가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집에서 반대하지는 않나.
“좋게 생각하진 않는다. 작가라는 직업이 배고픈 직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다. 한 작품의 몇천만원씩 팔리는 5~60대 작가들도 백수다. 결혼정보 회사에서도 화가의 등급을 c로 매긴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신 화가들도 이정도인데 아직 학생인 우리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님들에게 눈치가 보여 힘들어 하는 학생들도 많다.”
-유명 작가가 아니면 돈 벌기 힘들지 않나.
“학교 선배 중에도 ‘난 나중에 포장마차 할거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작가를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돈이 안되니 벌써부터 그림 이외에 부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안성캠퍼스에서는 단대별로 ‘대동제’가 매년 열린다. 예술대는 학과별로 치어공연을 준비한다.
-치어연습은 잘 되고 있는지.
“우리는 다른 학과랑 달리 치어를 준비하지 않는다. 다들 경쟁적으로 치어 연습을 하다 보니 밤새는 일이 많았다. 전공을 공부하러 온 아이들이 밤새 치어 연습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작년부터 서양화학과만 유일하게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큰 도화지 위에서 학생들이 붓 처럼 움직이는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다. 서양화학과의 성격을 보여주면서 학생들의 전공 연습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작년에 한 퍼포먼스를 본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우리가 생각해도 난해한 퍼포먼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도 시행착오를 각오했었다. ‘다신 안해’가 아니라 문제점은 수용하고 우리 학과만의 더 나은 전통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송민정 기자 minksong@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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