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최고 미래학자 토플러 선생이 ‘부의 미래’에서 세상 변하는 마일 속도를 이렇게 풀었다. 기업 100, 시민단체 90, 가정 60, 노동조합 30, 정부 25, 학교 10, 국제기구 5, 정치 3, 법 1. 학교가 기업의 10분의 1 속도이다.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학 김용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되었다고 언론에 조명을 다시 받는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좋아졌는데 세계에 주목받는 대학이 왜 없나요?” 모 TV 인터뷰에서 기자의 이런 질문에 답한다. “정부가 간섭과 통제보다는 자율과 지원을 해야 한다.” “한 번 교수되면 평생교수직이 보장되는 형식적인 정년보장제도 개선되어야 한다.” “취직이 우선인 대학교육이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가는 창의적 교육을 해야 한다.” “특히 칸막이식 학문영역을 탈피해 다양하고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갖춘 인재를 키워야 한다.”

  금년이 필자가 우리 중앙대학에서 교수를 한지 18년째이고, 대학본부의 연구처장과 건설대학원장 보직을 한 바 있다. 산학협력단은 교수들이 노력하여 가져온 연구자금을 관리하는 서비스 조직이다. 최소한 은행의 텔러(teller)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래야 연구비수주도 늘고, 학생 연구비지원이 가능하고, 우수한 연구 자원이 모이고, 좋은 연구결과가 생산된다. 고객의 요구를 묻고 들어라. 그리고 지속적인 개선으로 그들을 만족시켜라.

  연구를 많이 하는 좋은 대학의 교수들의 강의는 비례적으로 항상 좋다. 현재의 복잡한 연구지원제도는 외부의 자금을 많이 가져올 수 있도록 장려하는 차원으로 초점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특수대학원은 직장인을 위한 야간 석사학위과정이다. 일하면서 공부하겠다는 그들이 오래도록 갈망했던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우리 대학의 기본 책무이다. 현실은 수요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외국의 유명 대학원프로그램이 왜 우리대학에서 만들어 지지 못하는가? 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임교원이 없는 대학원에서 이방인 강사의 강의를 듣고 교문을 나선 그들이 모교로 소속감을 얼마나 강렬하게 느낄지 생각해 보라. 소속학부 강의와 연구에 지친 전임교수가 야간강좌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고 열정적이겠는가? 아무도 이 심각한 문제에 관심을 표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대학원과정은 공부보다는 사교의 장이 되고 있다. 변해야 한다. 고객이 감동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반값등록금 같은 이야기는 명품강의로 감동한 그들의 기부로 해결될 수도 있다. 생각을 바꾸자.

  최근 몇 년 흑석이 개벽한 것 같다. 재단에 큰 박수와 감사를 보낸다. 요즈음 교문에 들어 설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 직장이 좋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바람이 있다면, 흑석언덕에 우뚝 솟은 초고층 건물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경쟁대학이나 흑석을 찾는 모두가 놀라게 말이다. 나는 우리 중앙대학이 좋다. 언젠가는 Central University가 글자 그대로 세계의 중앙에 우뚝 선 Top Gun 대학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찬식 건축학부 교수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