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은 올 초부터 윤종빈 감독 인터뷰를 위해 섭외에 나섰다. 맨 처음 <범죄와의 전쟁> 홍보대행사에 연락을 취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개봉시즌 인터뷰는 끝났다’는 말과 함께 단칼에 거부를 당한 것. 윤종빈 감독은 말했다. “보통은 영화 개봉 즈음에 인터뷰를 많이 해요. 인터뷰를 안 좋아 하기도 하고 한 얘기를 계속 반복해야 하니까 그 이외에는 거의 안 해요.”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학연(?)을 이용했다. 마침 윤종빈 감독의 은사가 이현승 감독(영화학과 교수)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를 통해 윤종빈 감독이 영화학과 후배들에게 특강을 하러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윤종빈 감독과의 만남은 그렇게 성사됐다. 

글 강나라 기자 jiangnala@cauon.net 진민섭 기자 mseob2@cauon.net 
사진 강나라 기자

 

대박이다. 그의 작품 <범죄와의 전쟁>이 대박을 터뜨렸다. 누적매출액 360억, 누적관객수 460만명(5월 11일 기준). 손익분기점인 200만명을 2배 이상 가뿐히 넘겼다. 하지만 그의 대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학과 졸업작품으로 찍은 <용서받지 못한 자>는 2006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했다. 이현승 감독은 말한다. “학부 때 이미 김기덕, 홍상수 감독과 어깨를 견줄 재목이었다”고. 지난 9일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윤종빈 감독을 만났다.

-영화가 막을 내렸다. 요즘은 뭐하고 지내나.
“쉬고 있어요. 결혼하고 바로 <범죄와의 전쟁> 촬영에 들어가서 집에 자주 못 들어갔거든요. 아내에게 미안해서 요즘은 설거지, 청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웃음)”
-<범죄와의 전쟁>이 이렇게 대박 날 줄 알았나.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죠. 200만 정도를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놀라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이전 윤종빈 감독은 이미 <용서받지 못한 자>로 유명세를 탔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PSB관객상,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넷팩상을 받고 선댄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칸영화제까지 초청됐다. 무엇보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상업영화 못지않은 대중적인 재미를 갖추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가 당시 큰 관심을 받았는데.
“교수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 정도까지 갈 수 있었어요. 원래 <용서받지 못한 자> 시나리오는 단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수정하면서 장편이 돼버린 거예요. 촬영 기간도 길어지고 그만큼 제작비도 많이 드니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현승 교수님께서 ‘한번 해봐라’ 하셨어요. 마침 운도 좋았어요. 그때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였거든요. 왠지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장편으로도 찍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시작했는데 큰일날 뻔 했죠.”
-큰일날 뻔 하다니?
“시작을 하긴 했는데 제작비가 계속 바닥났어요. 이미 엎질러졌으니 어쩔 수 있나요. 계속 집에 전화해서 돈 부쳐달라고 하고, 또 며칠 뒤에 전화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조금만 더 부쳐달라고 하고. 그렇게 100만원, 200만원 지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엔딩크레딧의 제작겾塚悶?저희 어머니 성함이 들어가요.(웃음) 또 3학년 때 찍은 <남자의 증명>이라는 영화가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상금 500만원을 탔거든요. 그것도 제작비에 보탰어요.”
-친구들이 영화제작 막바지에는 도망가기도 했다고 들었다.
“원래 다 그래요. 알음알음 도와주는 거잖아요. 학생 영화니까. 매일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시간되면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전화 안 받는 친구도 있고 시간 없다는 친구들도 많았죠. 그럼 또 다른 친구한테 전화하고. 그래도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어요.”
-극장 개봉까지 했다. 수익이 있었나?
“당시 극장에 개봉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영화제에나 몇 개 보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현승 감독님의 소개로 <괴물>의 배급사인 청어람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마케팅비까지 3억 정도가 들어갔던 것 같아요. 수익은 없었죠. 거의 본전이었어요. 손해는 안 봤으니 다행이죠.”
-어리바리한 이등병 ‘허지훈’ 역할로 열연하기도 했다. 연기를 배웠었나?
“배우진 않았고요.(웃음) 영화학과 학생들은 동기나 선배 영화에 출연을 자주해요. 배우 구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저는 동기들 중에서도 많이 해본 편이었어요. 아참, 최근에도 <베를린>이라는 영화에 잠깐 출연했어요.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한석규 선배랑 같이 나와요.(웃음)”
영화감독이 되는 데 정도(正道)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은 대개 유명 감독 밑에서 연출부 스텝과 조감독 생활을 한다. 입봉하기까지 대략 5~10년이 걸린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은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비스티 보이즈>를 통해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비스티 보이즈>를 찍을 때는 29살이었다. 29살 감독을 바라보는 스텝들의 눈은 어땠나.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니 무시당하진 않을까’하는 걱정은 있었어요. 한국 사회는 나이를 많이 생각하잖아요.”
-나이가 들어가는 게 즐겁겠다.
“서른 살 됐을 때 너무 좋았어요. 남들은 싫다고 하지만 저는 너무 좋더라고요. 이제 나이 때문에 무시당할 일은 없겠다 싶었죠.”
-조연출 생활 없이 바로 상업영화를 찍었는데. 두려움은 없었나.
“영화 찍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학부 때 많이 해봤으니까. 그런데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는 만드는 시스템 자체가 달라요. 그런 게 좀 어려웠어요. <비스티 보이즈> 프로듀서가 영화학과 선배였는데 그 선배가 많이 도와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잘 몰라서 많이 고생했죠.”
-독립영화 제작 때와 무엇이 달랐나?
“상업영화라는 것은 목적 자체가 수입이에요. 제작자나 투자자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죠. 그런 부분과 촬영현장 사이에서 감독이 조율을 잘해야 한다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상업영화 감독이 해야 하는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줄타기거든요.”
-하지만 <비스티 보이즈>가 기대보다 성적이 안 좋았다.
“스코어는 별로 안 좋았어요.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들을 배웠죠. 독립영화는 감독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그런 게 없는데 상업영화는 어느 순간을 지나면 돌이킬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나쁘지 않았다는 얘긴가.
“결국 상업영화라는 것은 성적으로 얘기하는 거잖아요. 손해를 보진 않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던 작품이었죠.”
-성적이 안 나오면 다음 영화 제작이 힘들어지지 않나.
“물론 스코어가 중요하긴 한데 작품 흥행이 안 되더라도 작품성을 인정받으면 한번은 더 기회가 와요. 스코어도 안 나고 영화도 엉망이면 퇴출되겠죠.”
-<비스티 보이즈>를 하고 나서 다음 영화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언제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준비했나.
“<비스티 보이즈>를 끝내고 두세 달 정도 놀았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작품을 구상하게 됐어요.”
-<범죄와의 전쟁>은 어디서 출발했나.
“우리나라 대학생들, 특히 청년들을 보면 참 힘이 없어요.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요. 왜 그럴까를 생각했어요. 가장 처음에 했던 생각은 ‘내가 이렇게까지 살 수 있는 게 무엇 때문일까’였어요. 그러다 문득 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졌고 그걸 파헤치기 시작한거죠.”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모두 ‘남자’에 관한 영화다. 이런 영화만 찍는 이유가 있나?
“기자들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인데 정말 없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 같아요. 남성의 증명 3부작이니 하는 얘기는 다 평론가들이 하는 말이죠. 생각나는 대로 썼는데 그런 공통점이 우연히 있었던 것 같아요.”
-<범죄와의 전쟁> 누적 매출액이 300억이다. 감독의 수입은 얼만가?
“정확한 금액은 얘기하기 그렇지만 좀 벌었어요. 일반 직장인 기준으로 생활한다고 봤을 때 늙어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는 돈은 벌었어요.”
-감독의 수입은 영화 성적에 따라 달라지나?
“그렇죠. 고정액이 아니에요.”
-흥행이 안 되면?
“벌어놓은 돈으로 사는 거죠. 한 작품만 흥행해도 먹고 사는 걱정은 없어져요. 흥행이 안되면요? 안 쓰면 되요. 싼 술 먹으면 되고.(웃음)”
-대학 입학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요.(웃음) 부모님이 법대를 가길 원하셨는데 저는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배치표를 보는데 ‘영화학과’라는 단어가 눈에 띄더라고요. 아버지 몰래 중앙대 영화학과 특차전형(수능성적 100%로 선발하던 전형)에 원서를 냈죠. 영화연출은 중앙대가 유명하잖아요. ‘여기가 좋나보다’하고 지원한 거죠.”
-실제로 영화계에서 중앙대 영화학과는 어떤 위치인가.
“저는 중앙대를 나와서 이득을 많이 봤어요. 제일 좋았던 건 현장에 계신 선배들이 많다는 거죠. 제작자, 감독, 배우들이요. 중앙대 나왔다고 말하면 다들 도와주세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챙겨주시고. 제가 후배들을 도와주기도 하죠. 단편영화제 심사위원을 하다보면 가끔 제가 아는 이름이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친분 있던 후배들이요. 그럼 모르는 척 하고 ‘이 작품 좋지 않냐?’ 한마디 하죠.(웃음)”
-섭외에도 영향이 있나.
“영향이 없을 순 없어요. 중앙대 연극학과라고 이야기를 하면 느낌이 다르죠. 친해지기도 쉽고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고요. 다른 배우들보다는 호감이 가요.”
윤종빈 감독은 배우 하정우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하정우 동문은 연극학과 97학번. 윤종빈 감독의 1년 선배다.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모두 하정우 동문이 출연했다. 심지어 이 둘은 이웃사촌이다.
-하정우 동문이 세 작품에 모두 출연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워낙 친한 형이다보니 작품을 시작할 때 맨 처음에 얘기해요. 고민과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그럼 정우형이 ‘나는 뭐 할 거 없어?’라고 물어봐요. 이번 작품도 그렇게 해서 하게 된 거예요.”
-동네 형 하정우와 배우 하정우와의 차이가 있나.
“없어요. 똑같아요.(웃음) 평소에는 편하게 ‘종빈아’라고 부르지만 현장에서는 ‘윤감독’이라고 부르는 게 차이점이죠.”
-하정우 동문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겠어요.(웃음) 하지만 하정우씨가 계셨기 때문에 잘된 건 확실해요. 능력 있는 배우잖아요. 하정우씨 덕분에 시너지 효과가 났던 것 같아요.”
-윤종빈 감독처럼 평단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작품을 쓰기란 어려운 것 같다.
“저는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연습했어요. 제대하고 나서는 매일 하루에 한 편씩 단편 시나리오를 썼어요. 복학생이라 아무도 안 놀아주더라고요.(웃음)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베껴서 쓰기도 했어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좋은 시나리오는 내공이 필요하다. 학창시절 어떻게 준비했나.
“어떤 주제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책을 찾아보고 그랬죠. 저희 학번 때 까지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데는 유용하고 폭이 넓어지는 학문이에요. 사람들이 많이 공부하고 싶어 했어요. 세미나도 많았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요즘엔 영어공부를 많이 하겠죠.”

 

▲ 윤종빈 감독의 은사 이현승 감독.

스승 이현승 감독 인터뷰 … “윤종빈은 예뻤다”

윤종빈 감독의 이야기에서 그의 스승 이현승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학창시절 윤종빈 감독은 이현승 감독의 “넌 감독이 될 수 있어!” 한마디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남자의 증명>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출품 제안하고 <용서받지 못한 자>를 칸영화제에 추천해 신인감독을 영화계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도와준 스승 이현승. 그에 눈에 비친 윤종빈 감독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들어봤다.
-학창시절 윤종빈 감독은 어땠나?
“윤종빈 감독은 학창시절부터 돋보였다. 단편으로 시작했던 졸업작품을 장편으로 바꿔버리는 추진력, 영화를 완성시켜가는 과정에서 좌절하지 않는 인내력이 대단했다. 시나리오를 계속 써서 나에게 보여주는 등 노력하는 게 눈에 보여 예뻤다.”
-언제 ‘이 친구가 크게 될 것이다’라고 느꼈나?
“사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칸영화제가 아니라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될 뻔 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받고 친분 있는 베를린영화제와 칸영화제 위원에게 ‘이 작품 꼭 보라’고 말했었다. 그러자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수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출품하라고 했고 칸영화제에서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영화계에서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는 심사위원단부터 하늘과 땅 차이다. 그만큼 칸영화제의 수준이 더 높다. 안정적으로 수상할 수 있는 베를린영화제를 택하느냐, 수상 여부가 불확실한 칸영화제를 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윤종빈 감독은 모험을 택했다. 이때 기질적인 도전정신을 보며 ‘보통은 아니구나’ 싶었다.”
-학생 윤종빈이 아니라 감독 윤종빈은 어떤가?
“<범죄와의 전쟁>을 보면 배경(부산) 묘사가 뛰어나다. 윤종빈 감독이 부산출신이지만 오히려 익숙한 장면을 묘사하는게 더 어렵다. 자기경험과 거리를 두면서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관찰력이 뛰어나다.”
-이제 학생이 아니라 동료 감독으로 만나겠다.
“가끔씩 술자리를 함께한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감독 등이 모이는 술자리가 있다. 윤종빈 감독이 데뷔하고 나서는 데리고 다니며 소개시켜 주고 그랬다. 감독들이 다 귀여워한다. 류승완 감독이 지금까지 줄곧 막내였는데 이제 막내를 탈출했다고 특히 좋아했다.”
-제자가 성공하니 기분이 어떤가.
“후배이자 제자지만 나보다 묵직한 영화를 찍으니 묘하게 기분이 좋다. 나이가 있어야 낼 수 있는 무게감을 잘 표현한다. 사회의 이면을 잘 드러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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