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생의 속사정

▲ 박천경씨가 국악대 연습실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다

"군대도 연습의 연장선이다.
9수를 해서라도 군악대 간다"

국악대 건물 입구에서부터 울려퍼지는 악기 소리가 건물을 마치 공연장처럼 느끼게 한다. 거문고 명인을 꿈꾸는 박천경(국악관현악과 3)씨를 국악대 건물에서 처음 마주했다. 
-얼마 전에 사극 보조출연을 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아니라 내 손이 출연했다. ‘무신’이라는 사극에 출연했다. 주로 손을 클로즈업 하는 촬영이었다. 내 연주곡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음원을 사용한다. 연주를 한다기보다는 모션만 취할 뿐이다. 손 연기를 해야 한다.”
-대역 아르바이트면 힘들지 않나.
“대역은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다보니 악기의 나무가 갈라지는 불상사도 있다. 대기시간도 길다. 스텝들 입장에서 우리는 엑스트라지 연주자가 아니다. 대우도 좋지 않고 언제 촬영이 들어갈지 모르니 촬영장을 벗어나지도 못한다.”
-전통음악은 일반인이 듣기에 지루한 음악 아닌가.
“한번이라도 국악한마당을 끝까지 다 본 적 있나? 솔직히 우리도 국악한마당 잘 안본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국악을 지루하게 느끼는 것을 이해한다. 자기 돈 내고 국악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국악이 따분한 음악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재미없는 것을 왜 하나.
“재미 없다고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자기 나라의 문화니 애착을 가지고 봐야 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그것이 전통문화를 지켜나가는 길이다. 일본 같은 경우 인간문화재라고 하면 사람들이 신처럼 받든다. 독주회라도 열리면 전석이 매진된다. 일본인들도 전통 공연이 재밌어서 너도나도 보려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전통공연이 열리면 공연자의 제자들이나 지인들이 객석을 채우는 정도다. 요즘엔 국악도 대중성을 위해 현대음악과 결합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전통 공연은 따분해도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캐논이나 비틀즈의 노래는 흥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인터뷰 도중에 국악대 후배들이 박천경씨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이후에도 후배가 선배에게 인사를 하는 광경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선후배간의 규율이 엄격한 편인가.
“그렇다. 단순히 군기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학 생활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마주칠 사이다. 국악계가 좁다보니 사회에 나가서 많이 만난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그랬다. 예술고등학교 출신들이 워낙 많다보니 이미 한다리 건너서 아는 사이였다.”
-예술고 학생들의 텃새도 있는가.
“내가 입학했을 때 정원이 36명이었는데 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예술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이었다. 두명 중 한명이 나였다. 난 마치 예고에 전학 온 인문계 학생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출신 고등학교 구분 없이 다들 친해졌다. 학교에서 하는 정기 공연이 많아 학생들과 함께 연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됐다. 고등학생 시절 같이 입시 준비를 한 친구가 나와 다른 대학에 갔다. 그 친구는 예고 아이들의 텃새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
-졸업 후 진로는 결정했나.
“국립 악단에 들어가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악단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악단의 평균연령이 5~60대로 알고 있다. 빈자리가 없으니 오디션 공고도 잘 안난다. 실력이 뛰어난 선생님들이 이미 악단에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거문고는 악단에서 입지가 작아지는 추세다. 솔로로 연주를 할 때는 멋있는 악기지만 악단에서 함께 연주하면 소리가 작아 다른 악기 소리에 묻혀 버린다. 실제로 거문고를 뺀 악단도 있다.”
-다른 진로는 없나.
“팀을 꾸려서 연주회를 하기도 하는데 공연 때 드는 비용을 자비로 하다 보니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다. 그렇다보니 아마추어 팀은 오래 가지 못한다. 연주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드니 고기집이나 치킨집을 차려서 병행하는 경우도 많다. 떠도는 소문인데 해금을 진짜 잘 켜는 치킨집 사장님이 있다더라. 연주 실력이 뛰어나도 금전적으로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음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하루 연습량이 얼마나 되나.
“기본적으로 서너 시간씩 한다. 연습을 하루 안하면 내가 알고 이틀을 안하면 선생님이 알고 삼일을 안하면 관중이 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학교 연습실이 24시간 개방이 아니라서 연습을 하기 힘들 때가 있다.”
-연습실 말고 연습할 공간이 없나.
“국악대 학생들 대다수가 자취를 하는데 새벽에 자취방에서 장구를 친다고 해봐라. 바로 쫓겨난다. 소음 걱정 없이 연습하기엔 학교 연습실만한 곳이 없다. 하지만 새벽 한 시부터는 허가서를 작성해야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다. 허가서는 하루 전에 작성을 해야 한다. 절차가 번거롭다보니 허가서 쓰기를 미루다 가끔 잊어 버린다. 그럼 그날 새벽 연습은 다한 것이다.”
-남자들은 다들 군대에 가지 않나. 2년간 공백이 생기는 것 아닌가.
“다들 기를 쓰고 군악대에 가려고 한다. 군대에서 개인 연습을 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우리들끼리 서울대 가기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해당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나가야 군악대에 지원할 수 있다. 나도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이 제대하기를 기다렸다 군악대에 지원했다. 군악대만 아홉번 지원한 선배도 있다. 결국 9수를 해서 내 후임으로 들어왔다.”
일반인이 듣기엔 거문고 소리는 전부 비슷비슷하다. 그에게 자신의 소리와 다른 사람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연주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친한 친구의 연주소리도 바로 알아챌 수 있다고 했다.
“친한 친구의 글씨체 정도는 알아 볼 수 있지 않나? 우리도 그렇다. 지금 누가 연습하고 있겠구나 금방 알아 차린다. 우리한테 연주는 글씨처럼 자연스러운 거니까.”


글·사진 송민정 기자 minksong@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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