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중앙대 구두방에서 수선일을 하는 이무웅이라고 합니다. 서울캠 학생회관에 서서 왼쪽을 보시면 샛길이 있습니다. 쭉 들어와 계단에 올라 오른쪽을 보면 구두 수선집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제가 근무하는 곳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남들처럼 공부 열심히 하고 취직해서 결혼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40대 중반까지 지내다가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됐습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아득하지만요. 그렇게 가세가 기울고 어떻게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야 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굶고 있는 가족들을 두고 바로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생계가 유지돼야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호구지책으로 1,2년 정도 구두 수선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980년 5월 3일 토요일. 그렇게 처음 중앙대에서 구두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학생들이 참 많습니다. 80년대 군사정권시기에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열정이 있지만 배를 굶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3,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구두닦이 아르바이트를 모집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구두닦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점도 잘 나오고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12명의 학생들이 ‘한우물’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습니다.


말괄량이 음대 여학생도 기억이 납니다. 애인 왔다고 허겁지겁 구두를 수선해 달라고 했던 게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후로 여학생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주 찾아와 취직 고민부터 결혼 고민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직장 그만두고 결혼이나 할까하던 그 여학생에게 나중에는 애 낳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풋풋했던 대학생이 지금은 한 아기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니. 중앙대에 와서 참 소중한 인연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올해 일흔 한살이 됐으니 제 인생의 반을 중앙대 학생들과 보낸 셈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과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또 수선도 저렴하게 하고 있으니 많이 이용해주면 좋겠습니다. 돈이 부족하거나 밥 먹어야 돼서 조금만 깎아달라고 하면 현장 할인도 가능합니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아, 학교에서는 싸게 수선했구나~’ 생각할 겁니다. 하하. 굳이 신발 안 고쳐도 되니까 심심하거나 고민 있으면 놀러 오세요. 저는 계속 수선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12년 4월 9일 수선공 이무웅 드림

이 편지는 취재원 인터뷰를 바탕으로 김누리 기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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