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목요일(19일)은 4·19혁명이 발생한 지 52주년이 되는 날이다. 4·19혁명은 이승만 정부에 불만이 쌓였던 민중들이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시작되었다. 결국 12년 동안 사사오입개헌, 발췌개헌 등을 통해 장기집권을 했던 이승만 정부는 4·19혁명을 계기로 물러났다.
 민중의 힘을 보여준 4·19혁명= 학자들은 4·19혁명에 대해 ‘한국 민주화운동의 초석’으로 평가하고 있다. 장규식 교수(역사학과)는 “민주화운동의 시작이며 혁명 이후 민간차원의 통일론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정해구 교수(성공회대)도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형식적이었다”며 “민중들은 4·19혁명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고 이는 곧 5·18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4·19혁명은 혁명인가, 의거인가= 1960년에 발생한 4·19혁명은 이듬해에 일어난 5·16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에 의해 의거로 지칭되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혁명으로 지칭되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명칭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즉각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는 의견과 4·19혁명은 정치적 변화만 이루고 경제·사회적 변화를 못했기 때문에 의거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 밖에도 지금의 논쟁은 정치적인 견해가 개입된 논쟁이라는 의견도 있다.
 4·19혁명 연구는 어디까지= 4·19혁명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홍석률 교수(성신여대)는 “최근에는 4·19혁명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연구한 논문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혁명에 참여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시민계층과 지역에 대한 논문 역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4·19혁명 뒤에 벌어진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에 관한 논문과 혼란기로만 인식되던 4·19혁명 이후의 한국사회동향을 재평가한 논문들도 관심대상이다.
 그날을 되새기며= 당시 6명의 학생들을 잃은 중앙대에서도 매년 4·19혁명 기념식을 진행한다. 올해도 제52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19일 서울캠 중앙도서관 앞 의혈탑에서 열린다. 기념식에는 재학생과 교직원, 동창회, 4·19 선양회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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