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윤태준씨가 사진기를 어깨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면에 실릴 사진을 부탁하니 윤태준씨(사진전공 2)는 조명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조명기를 만지던 모습과 달리 사진기 앞에 선 윤태준씨는 다소 수줍었다. 사진을 찍는 것과 찍히는 건 어떻게 다르냐는 물음에 윤태준씨가 답했다.
“사진을 배우며 오히려 렌즈 앞에 서는게 싫어졌다. 내 모습이 사진 속에 숨김없이 드러나니 때때로 부끄러워진다. 사진은 거짓이 아닌 사실이니까.”
-그럼 찍은 사진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진은 무엇인지.
“남자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화장실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행위를 하는 곳이다. 숨기고 싶은 것을 공중화장실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해결한다는 아이러니가 흥미로웠다. 다른 사람들이 버젓이 있는 데 바지를 벗는다는 게 웃기지 않나. 그래서 지하철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진 찍는 걸 허락한 건가?
“당연히 몰래 찍었다. 화장실에 사진기를 들고 가면 사람들이 나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몰래 찍는다 해도 종종 들켰다. 사진 찍다말고 화장실서 얻어맞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변태로 오해받아 신고도 받았다. 그러고도 정신 못차리고 또 지하철 화장실을 전전했다. 나중에는 4호선의 모든 화장실을 꿰뚫게 됐다.”
-사진도 종류가 많은데 그중 어떤 사진을 찍고 싶나.
“사진학과는 광고, 다큐, 순수, 디지털미디어 사진으로 전공이 세분화 되는데 나는 순수사진을 전공하고 싶다. 광고사진은 돈을 벌기도, 취업을 하기도 좋다. 그에 반해 순수사진은 고정된 데뷔 경로가 없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다. 대게 자비로 사진전을 열어 자신을 알리려 노력한다. 인정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결과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이다.”
-순수사진 작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은 편인가.
“비등비등하다. 아무래도 선배님들 생활하는 것을 보면 순수사진 작가는 경제적으로 힘들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되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내가 현실감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하고 싶은 게 우선이다. 가끔 순수사진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님들을 만나면 나에게 그러신다. ‘순수 하지마.’”
그는 작업노트를 꺼내 자신이 작업한 사진의 준비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정성스레 적혀있는 글에서 사진을 향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겪을 생활고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순수사진 작가가 되고 싶다 하면 선배들이 그런다
‘순수하지마라. 힘들어진다’

 


-작업할 때 필요한 장비가 학교에 잘 구비되어 있나.
“고급 장비가 학교에 잘 기재되어 있다. 심지어 카메라 없이 신입생 시절을 보내는 사진학과 학생도 있다. 카메라를 비롯한 여러 장비를 빌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 찍을 때 쓰는 필름, 인화지, 약품 등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자잘한 것 같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필름 한통이 11만 5000원이고 필름 현상을 외부에 맡기면 장당 2500원이 든다. 학기 중에 작업하는 양이 워낙 많으니 부수적으로 드는 돈이 많다. 학기 중에 80만원 이상의 사비가 든다.”
윤태준씨는 지난 3월 9일부터 16일까지 상수동 갤러리에서 ‘one step’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가졌다. 친구 4명과 함께한 생애 첫 전시였다.
-작업비도 만만치 않을텐데 전시회 비용 마련이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그렇다. 인사동 같은 경우엔 갤러리 대관비가 150~200만원 정도다. 자비로 대관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학생들이다 보니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막 리모델링을 끝낸 갤러리를 저렴한 가격으로 대관했다.”
-사진전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적자?(웃음) 농담이고. 확실히 사진만 찍던 때랑은 다른 경험을 했다. 하얀 벽에 내 사진을 거니 예상외로 빈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진을 모니터로만 볼 때와 빈 공간에 액자로 건다는 건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사진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림과 달리 사진은 전시나 관람 문화가 활성화 되지 못한 걸로 안다.
“한국에서는 사진이 저평가 되어 있다. 외국은 한국보다 사진 전문 갤러리 수가 월등히 많다. 자연스레 사진도 활성화 되고 사진작가와 관람객 수도 많다. 안드레아 구르스키같은 사진작가의 작품은 22억에 팔리기도 했다.”
-사진은 여러 장 인화할 수 있지 않나. 비싼 값에 팔린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필름은 원하는 만큼 사진으로 인화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허락없이 마음대로 인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작가가 찍은 사진을 직접 인화하고 사인까지 한 사진을 ‘빈티지 프린트’라고 한다. 사진은 인화할 때  마다 조금씩 달라져 원본사진과 두 번째로 인화한 사진의 값어치가 다르다. 그래서 사진 한 귀퉁이에 몇 번째로 인화한 사진인지 작게 표시한다. 이처럼 사진도 에디션으로 유통 가능하며 한정성을 인정받아 상당히 고가로 거래된다.”
-스물다섯 살, 늦은 나이에 사진학과에 왔다고 들었다.
“원래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더 공부했다간 답답해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첫 학기를 마치자마자 부모님을 설득해 바로 자퇴했다. 군 제대 후 떠난 자전거 여행에서 즉흥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나고 사진을 인화해 보니 내가 찍은 것이지만 정말 못 찍더라. 나조차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그때 생각했다. 내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고 싶다고.”
-사진학과는 유독 늦은 나이에 대학에 오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거나 법학을 공부하다 서른이 넘어 사진학과에 오시는 분들도 있다. 남들이 보기엔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를 비롯해 늦은 나이에 사진학과에 입학한 사람들 모두를 관통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냥 사진이 좋으니까.”
좋은 사진이 뭐냐는 질문에 담배꽁초를 찍은 사진을 건넸다.
“사진을 보는 기준은 없지만, 이 사진을 보며 하다못해 몇 년 전 피다만 담배라도 생각나야 한다. 사진은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

 
▲ '집착'을 주제로 한 윤태준씨의 작품들.


 송민정 기자 minksong@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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