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은 정치국제학과 학생회장


‘깨끗한 한 표 두 표가 모여 대한민국을 앞으로!’ ‘세상을 바꾸는 소중한 나의 한 표!’ ‘투표로 심판하고 투표로 바꿔주십시오.’ 선거철이 되니 투표를 독려하는 말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말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어떤 다급함이 느껴진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급함, 득표율을 높여 여당이 되기 위한 다급함, 그리고 4년, 5년에 한 번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다급함. 그래서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한 표’를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나의 한 표가 세상을,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누군가는 ‘국민이 자유로운 것은 대표를 선출하는 동안뿐이며, 대표가 일단 선출되면 국민은 다시 노예로 돌아가버린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백년은 훨씬도 더 된 이 말에 아직까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은 내가 행사한 한 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국회 의석의 명패정도여서가 아닐까.
 

수많은 당이 내놓고 있는 재벌개혁만 보더라도 실제로 그들이 말하는 공정경쟁사회, 일자리 만들기 등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19C 말 미국의 역사를 보면 미국판 재벌해체법이었던 ‘반독점법’의 결과는 록펠러와 같은 재벌 오너는 사라지게 했지만, 그 자리를 그대로 꿰찬 것은 금융자본의 요구를 맞춰주기 위한 구조조정과 배당 전문가들이었다.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투자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고, 단기적 이해에만 몰두한 금융자본에게 바칠 수 있었던 수익은 일자리를 줄이고, 열악하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왔다.


한편 수없이 남발되고 있는 복지공약을 찬찬히 살펴보면 비현실적인 복지공약 또한 매우 많다. 이러한 복지공약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문제거니와, 사실 비정규직 문제와 정리해고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문제해결밖에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크게 가리고 있다. 위와 같은 공약들로 당장의 총선과 대선에서의 성과는 기대할 수 있을지언정, 진정으로 장기적인 경제위기와 정치의 위기에 대한 해답―진정한 서민들의 대안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가 바꿔야 할 것은 국회의원 명패가 아니라 바로 나의 삶일 것이다. 대학생인 ‘나’의 청년실업 문제, 노동자인 ‘나’의 최저임금 문제, 여성인 ‘나’의 성폭력 문제 등등. 하지만 이런 나의 삶을 바꿀 수 없는 정책들을 보여주기만 하는 그들의 정치는 가히 ‘표(票)퓰리즘’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혹자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표(票)퓰리즘에 더 이상 속지 말고 잘 투표하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라서 속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속고 있는 것을 알아도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정치는 누구도 사람들을 속일 수 없게 하는, 선거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치에 대한 한 명 한 명의 관심과 문제제기가 아닐까 한다. 지금 선거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민생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해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만나면서 대한민국이 앞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토론과 논쟁이 시대의 지성들이 모인 이곳, 대학에서부터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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