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들과의 대화에서 늘 청초한 기운과 순결한 마음을 느낀다. 개학 이후 학과장으로서 대화해본 철학과 신입생들 가운데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와 인류에 이바지할 일을 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학이 그들에게 해주어야 할 일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그들의 목표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주는 지(知)의 세계를 열어주고 그 세계를 스스로 개척하고 성취해가도록 하는 知의 기반을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대학에서의 知는 어떠한 성격일까? 전문학원에서 행정고시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수험을 대비해서 축적해야 하는 知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다. 대학에서의 知는 미지의 세계로 앎의 지평을 확장해가는 탐구의 지이며, 따라서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知가 근본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앎의 지평을 넓혀가는 작업이 바로 연구이며, 대학 교육도 실은 바로 이 연구하는 방법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또 대학에서의 知는 사회에 진출하여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 지식보다는 인간과 세계의 흐름을 평가하고 역사의 방향을 전환시켜가는 궁극적 知를 더욱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삼게 된다. 인문학의 知는 바로 이러한 궁극적 知와의 연관성이 여타 영역의 학문의 지보다도 큰 것이다.
인문학의 知는 자신이 현재 의존하는 知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산출된다. 현재 의존하는 知를 문제 삼을 때에 근원적으로 검토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영혼에 형성되어 있는 知의 구조와 체계이다. 그 구조가 실은 마음과 영혼의 구조이며 온갖 知와 행동을 낳는 구조이다. 인문학적 탐구는 이러한 마음과 영혼의 구조를 조정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知와 감정 그리고 행동까지도 더 고상한 차원으로 체계화하는 작업과 관련된다.
인간의 지속가능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 인간의 안전보장에 관한 관심이 더욱 증대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과학기술의 발전만으로 미래가 보장될 것인가는 의문이다. 인간의 안전보장이 화두가 되면서 그동안 인간이 의지해온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그것을 지원하여 온 패러다임에 대한 검토와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이야기 되는 것은 인간개발이다. 인간개발이 과제로 도출된 것에는 근대문명의 오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작용하였다. 근대문명의 오산이란 다름아닌 과학기술의 힘을 맹신하고, 과학의 방법에 의해서 얻는 지식만이 진실하다고 보는 태도를 말한다. 이에 대한 반성에 따라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영역을 다루는 인문학이 인간개발의 주요 영역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는 인문학 관련학과를 대학의 얼굴을 세워주는 장식품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데,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미래 세대의 주역을 양성하는 대학이 인간개발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에 대한 연구와 교육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