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작년부터 ‘공생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대기업의 사회기여를 강조하고 나섰는데, 그 배경에는 영국 일간지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아나톨 칼레츠키가 2010년에 자신의 저서에서 제시한 ‘자본주의 4.0’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발상과 철학이 깔려 있다.

   자본주의도 진화한다고 본 칼레츠키는 시장과 정부가 서로 관여하지 않는 자유방임의 고전적 자본주의를 1.0, 복지국가 개념을 바탕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수정자본주의를 2.0,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통해 다시 정부역할이 축소되고 시장기능이 강화된 신자유주의를 3.0으로 봤다. 또한 지나친 시장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실히 보여준 2008년 금융위기를 전환점으로 신자유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 4.0’의 신체제가 탄생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것은 정부와 시장이 모두 틀릴 수 있으며 불변의 제도로 관리하기엔 세계가 너무 예측하기 어렵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정부와 시장을 상호의존적 동반자관계로 인식하고 환경에 맞춰 원칙과 제도와 규제를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적응성 시스템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1달러 1표의 차가운 자본주의에 1인 1표의 민주주의가 결합된 유연한 자본주의, 기업의 사회공헌과 빈곤층 배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등에 초점이 맞춰진 ‘따뜻한 자본주의’를 표방하여 ‘모두가 행복한’ 성장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시장과 정부의 조화와 균형 및 스마트한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4.0’은 화려한 수식어들처럼 실현될 수만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폐해를 줄이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2008년 금융위기를 자본주의의 실패로 보는 자체가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는 지적, 정부가 시장의 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 하면서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강요하는 자체가 근본적 오류라는 지적, ‘자본주의 4.0’은 허구적이며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 가장 ‘따뜻한 자본주의’에 가까운 유럽 국가들이 국가부채로 위기에 빠진 것을 보면 이 역시 완벽한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아니라는 지적 등이다. 아무튼 칼레츠키가 정부 주도와 시장 주도의 한계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정부와 시장의 동반자적·협력적 관계이며 그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의 공유라 할 수 있겠는데, 실질적으로는 그것이 2.0 시대로의 부분적 회귀와 얼마나 다를까 하는 막연한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4.0’ 화두는, 성장의 그늘에 가려지거나 방치되어 왔던 빈부 양극화의 심화를 비롯하여 고용 없는 성장, 비정규직 문제, 기업의 사회공헌, 중소기업·대기업의 동반성장 생태계 조성 등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윤만 추구하는 냉정한 자본주의가 아닌 약자를 보듬고 배려하는 온정적 자본주의, 그런 ‘낭만적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를 봄날의 햇살 비치는 창가에 앉아 몽상해본다.

이재성 아시아문화학부 교수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