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감독이 되었을 때 막내스텝의 마음까지 헤아리려면 지금의 경험도 중요하다

영화를 잘 차려놓은 밥상이라 표현한 어느 배우의 수상소감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남녀 주연상 이외의 분야별 수상자는 대중의 관심 밖이다. 영화연출자를 꿈꾸는 이원근(영화학과 4)씨는 말한다. “영화를 그림으로 치면 연출자는 화가다. 촬영은 도화지, 조명은 물감, 녹음은 붓이다. 연출이 영화의 리더로서 모든 걸 조망해야 한다. 하지만 도구 하나라도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분야가 작품을 완성시킬 때 필요한 작업이다.”

 

-학생 때부터 현장경험을 쌓는가.
“많이 하지는 않는다. 현장 자체가 너무 힘들다. 현장에선 하루에 세시간 자면 많이 잔거다. 심리적, 물리적 고충이 동반되니 스트레스가 심하다. 영화를 좋아해서 온 학생들인데 현장경험으로 영화가 싫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를 그만두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현장에서 어떤 일을 했나.
“제작지원 갔을 때 차량을 통제하는 일을 했다. 어떤 장면을 찍고 있는지도 몰랐다. 슛 들어간다는 무전이 오면 차를 막고, 컷 소리가 나면 차를 보냈다. 점심시간에는 스텝들의 도시락을 치웠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 아닌가.
“촬영 규모가 커지면 누군가는 넓은 도로를 막아야 한다. 차량통제하러 온 사람에게 이번 촬영씬의 의도나 취지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사실 차를 어떻게 통제하는지가 영화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 있던 선배가 말했다.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을 거다. 분명한 건 네가 이 차를 막기 때문에 저 컷이 만들어 진다는 거다.’”
-촬영현장은 거칠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낭만적일지 몰라도 촬영 현장은 낭만적이지 않다. 나는 감독이 되면 스카이라운지서 제작 방향을 얘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산적처럼 수염도 자르지 못하고 현장에 매여있다. 언제든 좋은 환경이 주어지진 않는다. 비가 와도 햇볕 드는 씬을 촬영해야 한다.”
-4학년이면 곧 졸업인데 영화학과의 졸업조건이 있나.
“졸업작품을 찍는다. 학생들이 연출, 촬영감독, 조명, 마이크 등 영화의 세부적인 파트를 맡아 한 작품을 완성시킨다.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생인 윤종빈 감독의 첫 데뷔작이 하정우 주연의 ‘용서받지 못한 자’였는데, 졸업작품이었다. 당시 하정우도 중앙대 연극학과 학생이었다.”
-졸업작품 찍을 때 드는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곳에서 작품들을 선별해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발품을 팔면 지원받을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데 사실 말만 쉽다. 졸업작품을 찍으려 휴학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한다.”
-영화학과는 등록금도 비싸지 않나. 졸업작품 지원금 안 나오는지.
“정말 등록금만 비싸다. 학교에서 따로 지원금이 안 나오니 제작비에 허덕이는 건 학생들 몫이다.”
인터뷰의 흐름을 끊는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이원근씨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졸업한 영화학과 동기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끝맺으며 상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취업 안해도 되니 학교나 놀러와.’
-선배들 중에 취업 못한 사람 많은지.
“‘그 선배 뭐하고 있어?’ 라고 물을 때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 ‘그 선배 놀고 있어’다. 우리들만의 슬픈 농담이다. 진짜 노는 게 아니라 노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말이 좋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영화감독 지망생이지 남들이 보기엔 백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앙대 영화학과는 전통도 있고 유명하지 않나. 다들 자부심이 있을거 같다.
“후배들에게 말한다. ‘너가 중대 영화과인건 알겠고, 그래서 넌 뭐지?’라고. 나한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갓 영화를 시작한 영화학과 학생들일 뿐이다.”
-다들 진로는 어떻게 되는지.
“영화스텝으로 일하거나 홍보마케팅 분야로 빠지기도 한다. 도제식으로 현장서 막내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한방을 노리기도 한다. 몇 안되는 경우긴 한데 실례가 있다. 앞서 말한 윤종빈 감독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아 ‘용서받지 못한 자’를 찍고 깐느영화제까지 갔다. 그 후 ‘비스티보이즈’라는 상업영화를 찍고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흥행작을 내놓았다.”
-윤종빈 감독 같은 경우가 많은지.
“흔치 않다. 영화감독이 되는 방법은 많다. 시나리오 공모전을 통해 데뷔를 하기도 한다. 영화사마다 찾아가 시나리오를 봐달라고도 한다. 이런 상상도 해봤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나리오를 투자사 사장이 우연찮게 발견해 ‘자네 시나리오 잘 읽었네 나와 계약하지’(웃음). 그런데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학과면 다들 박봉 아닌가?
“아르바이트를 해 기본 시급만 받아도 우리 월급보단 더 될 거다. 연출부 막내는 한 달 동안 죽어라 일해도 100만원 받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것도 많이 개선된 거다.”
-다들 영화감독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불안하지는 않는지.
“영화감독은 불안한 직업이다. 그런데 되묻고 싶은 건 불안하지 않은 일은 뭔가? 좀 더 안정적인 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중요치 않다. 나에겐 꿈이 있다. 누군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영화감독을 꼽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랐으면 한다. 불안해 할 시간에 차라리 그 길을 이루는 방법을 찾겠다.”


영화는 끝났다. 사람들이 객석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엔딩 크레딧은 올라간다. 스크린 속에 담긴 배우의 얼굴은 사라지고 촬영 현장을 스쳐간 스텝 모두의 이름이 올라간다. 엔딩 크레딧 하단에서 이원근씨의 이름도 발견한다. 이미 관객은 모두 빠져나가고, 바닥에 떨어진 팝콘처럼 엔딩 크레딧은 스크린 속에 버려져 있다. 하지만 이원근씨의 영화는 이제 막 크랭크인 됐다. 엔딩 크레딧 상단에 이름이 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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