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석, 소아청소년과 교수 동행취재
  • 정미연 기자
  • 승인 2012.03.2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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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로 아이들 마음까지 듣는다

 

 

하얀 가운은 막강한 힘이 있다.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털어놓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하얀 가운의 의사가 자신의 병을 고쳐줄 구원자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하얀 가운 속 의사의 일상은 고되다. 환자에겐 10분의 진료지만 의사에겐 하루 종일 진료시간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는 자신을 믿고 진료를 맡기는 환자의 아픔을 나눠가지기 때문에 더욱 고되다.
“말이 좋아 의사지, 이 직업은 본인이 힘들어요.” 직접 눈으로 본 임인석 교수(소아청소년과)의 하루는 그의 말을 여실없이 보여주는 하루였다.

08:30
우는 아이 잡는 아빠 미소
“으아앙~” 그의 아침은 다정관 7층 병동에서 시작한다. 첫 인사부터 울음이다. 유모차에 누운 아이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 닿자 울음부터 터트렸다. 간호사와 레지던트들이 아이의 울음을 그치려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때 임인석 교수가 “옳지 그래~ 아팠어?”하며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미소를 지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숨을 고르며 눈물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아~ 해보자”란 말에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입을 벌린다.
“근데 왜 타미플루를 안 준거야? 열이 나는 애한테 지금까지 약을 안 주는 게 말이되?” 아이를 보던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레지던트를 보는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2년차 레지던트는 당황하며 급하게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말 한마디에 인턴부터 레지던트 2년차까지 차트를 넘기고 무언가를 적는 등 바빠졌다.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하는 ‘아빠 미소’를 가졌지만 진료에서 만큼은 꼼꼼한 의사의 모습이었다.

▲ 아침 회진 중 아이를 진찰하고 있다.

11:00
걱정병 치료하기
한 남자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아이는 귀엽게 배꼽인사를 하고는 “오랜만에 뵙네요”하며 직장동료에게 건넬 법한 말을 했다. 아이의 맹랑한 말에 진료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는 늘 하던대로 청진기로 호흡 상태를 체크하고 검사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그는 많이 괜찮아졌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아이 엄마의 표정은 좋지 않다. 진료 말미에 아이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이가 먹고 있는 약이 나중에 고혈압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너희 엄마 또 쓸데없는 걱정 한다”며 “괜찮아요. 걱정말고 먹어요”라고 말했다. 말을 들은 아이 엄마는 그래도 안심이 안된다는 듯 재차 묻고는 그에게 한 번 더 안심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진료실을 나섰다. 부모님들의 걱정은 끝이 없는 것 같다는 말에 그는 “소아과 의사는 치료해야 할 사람이 두 명이에요. 한 명은 아이고 한 명은 부모죠. 부모들이 맘 편히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해야해요. 부모의 걱정병을 치료해주는 것도 우리 몫이에요”라고 말했다.

12:30
분을 쪼갠 생활
병원 회의는 지하 1층 회의실에서 밥을 먹으며 진행됐다. 분을 쪼개 생활하는 의사들을 위해서다. 임상교수 중 그가 맡은 보직은 교육수련부장이다. 정작 그는 발표를 하느라 점심 때를 놓치고 말았다.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방으로 돌아와 잠깐 메일 확인을 하는데 어느새 12시 30분. 오후 진료가 곧 시작된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속도 모르는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 생활이 이래요. 이렇게 정신이 없어.(웃음) 안되겠다. 계단으로 가야지. 운동 부족인데 걷지 뭐”하며 비상구로 향했다.

▲ 2년차 레지던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13:30
 성장을 지켜보는 의사
후반전 시작이다. 이젠 어린이집과 학교를 마치고 온 학생들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초등학생들 틈에서 키가 불쑥 솟은 학생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여드름이 두둘두둘 났지만 얼굴은 앳된 남학생이었다.
의사 “지금 몇 학년이지?”
학생 “고2요.”
의사 “내가 너를 5년 동안 봤네. 그런데 얼굴이 왜 이래? 요새 사랑을 하시나~ 누구 생겼어?”
학생 “아이~ 아니에요.”
의사 “생긴 것 같은데. 말해봐, 누구야.”
학생 (웃음)
의사 “커서 뭐 되고 싶다 했지? 로봇 만든다했나?”
학생 “네.”
의사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
오늘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그는 신장 기능이 많이 향상됐다는 소식을 전한다. 5년 전, 신장이 좋지 않아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성장과정을 쭉 지켜본 그로서는 지난 5년이 참 빠르게 느껴진다며 신기한 듯 바라봤다.

14:50
소리만 들어도 알아
예약 환자는 11명이나 남았지만 3시가 되도록 아이들이 오지 않았다. 그는 짬나는 시간에 차트 정리를 한다. ‘탁, 탁, 탁’ 짧게 끊어지는 소리에 그의 손을 보니 그는 독수리 타법을 쓰고 있었다. “용산병원에 있을 때는 손으로 차트를 썼었어. 그래서 타자가 익숙하지가 않아”라며 겸연쩍은 듯 웃었다.
마침 간호사가 들어와 환자가 온다는 말을 전했다. 들어온 환자는 말도 못하는 갓난아기. 들어오자마자 우렁차게 울었다. 그는 청진기를 대기도 전에 울음소리를 듣고 “저번보다 울음소리가 안 좋네”하며 목부터 살펴봤다.
그도 처음부터 아기를 잘 다룬 건 아니었다. 레지던트 1년차, 그는 신생아가 제일 무서웠다고 한다. 아기는 말없이 울기만 하는데 도통 어디가 아픈지 알 수가 없었다. 주먹만한 아기의 생명은 오직 의사의 판단에 달렸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 덕분에 이제 웬만한 울음소리로 아기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아기가 높은 소리로 울면 뇌에 염증이 있는지 의심해야 하고 애가 자지러지게 울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면 장이 꼬였는지 봐야 한다. 이젠 애가 졸려서 우는지 배가 고파서 우는지 다 안다.”

▲ 임 교수가 독수리타법으로 차트를 작성 중이다.

16:30
하루의 마침표
외래 진료가 끝났다. 드디어 고단한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가 싶더니 오늘 아침 회진을 돌던 병동으로 향했다. 늘 이렇게 병원에서의 하루는 회진으로 시작해 회진으로 끝난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친 그의 표정은 한결 가볍다. 병원 일에 바깥 일에 바쁜 그이지만 병원에 있을 때 만큼은 편하고 행복하다는 그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글·사진 정미연 기자 MIYONI@cauon.net


임인석 교수(소아청소년과)

아이들은 텔레비전에서 뽀로로를 보면 울음을 멈추고 병원에선 임인석 교수를 보면 울음을 그친다. 이제 아이 울음소리는 자장가 같다는 그는 의사 생활 30년 차의 교수다.
전문 진료 분야는 소아청소년의 신장, 비만, 성장, 알레르기 치료. 전문 진료 분야에 맞게 그는 청소년 상담에도 능통하다. 아이들의 성장을 몇 년 동안 지켜보는 경우가 많아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이해한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찾아오는 환자가 많다.
진료 볼 때 만큼은 무서울 정도로 꼼꼼해진다. 진료 과정 중 빠트린 부분을 발견하면 따끔하게 혼을 내는 등 병동에서의 임인석 교수는 칼 같이 변한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지도 학생들과 격 없이 만나 밥을 먹고 영화 보러가길 즐긴다. 그야말로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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