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생의 속사정

 

▲ 지난 17일 김유섭씨가 루이스홀 무대에서 연습하고 있다.

이정도면 충분히
연습했다고 하면서
나는 또 춤을 추고 있다

 본래 한국무용이란 유희의 목적보단 조상의 한을 대변하기 위한 춤이었다. 서민들의 척박한 현실을 표출하는 몸짓이었다.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척박할지라도 무용의 형태는 현대에 와서 많이 달라졌다. 텔레비전만 틀어도 현란한 춤을 추는 아이돌이 넘쳐난다.
“아이돌의 춤을 보면 즐겁다.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들의 춤은 조상의 슬픔과 감동까지는 표현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김유섭(무용학과 4)씨를 만났다.
-무용 한다고 하면 사람들 뭐라고 하나?
“사회적 인식자체가 무용을 하는 사람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본다. 무용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고 확실히 이해하는 사람이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더불어 동작에 대한 습득력도 빠르다. 의대생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더 나은 무용을 위해 공부한다. 감정전달 위해 노력하는 무용수를 무식하다 보는 건 선입견이다.”
-무용학과 학생들은 동아리 같은 학교 활동에 참여를 안하는 것 같다.
“연습량이 많아서 연습 이외의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영화는 촬영을 하면 기록으로 남고 덧붙일 수도 있지만 무용은 편집이 불가능하다. 생방송처럼 한 번의 실수가 무대 전체를 망친다. 연습량에 따라 바로바로 성과가 보이기 때문에 시간이 항상 촉박하다. 우리가 사람이라,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거라 그렇다.”
-영화와 달리 무용은 대중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많은데.
“편견을 갖고 무용을 정의내리기 전에 우리 공연을 보고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무용단 공연자체가 무용하는 사람들만 보러 오는 게 일반화되었다.”
-남자가 입기에 무용복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쫄쫄이를 말하는 건가? 다들 무용한다고 하면 쫄쫄이 입냐고 묻는 데 타이즈는 놀림거리가 아니다. 타이즈는 무용의 기본이자 예의다. 몸의 근육을 잡아준다.”
-무용은 나이가 들면 하기 힘들지 않나.
“물론 발레는 근육의 섬세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이가 먹으면 근육이 퇴화해 수명이 짧다. 하지만 한국무용은 근육의 힘보단 호흡으로 하는 무용이라 나이의 제약이 크지 않다. 단전으로 호흡해 배꼽 밑에 숨을 웅축했다 밖으로 내뱉으며 동작한다. 겉으로 보기엔 움직임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속에서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숨을 모으듯 모든 감정을 모아야 한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비오듯 한다.
-그렇다면 한국무용은 무엇인가?
“원래 한국무용은 무대를 갖추고 추는 춤이 아니라 마당이나 장터에서 둘러앉아 보던 춤이었다. 발레는 무대 위에서 추기 때문에 관객의 시선은 정면을 향한다. 하지만 한국무용은 무대가 없어 앞, 뒤, 옆, 사방에서 관객의 시선을 받는다.”
-진로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무용학과 학생들의 진로는 어떤가.
“국립무용단에 들어가거나 학교 강사나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하다. 나도 그렇고 많은 학생들이 무용단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국립무용단은 어떻게 들어가는 건지.
“국립 무용단이 10개 정도 있는데 무용단마다 매년 대략 2명의 정원이 생긴다. 오디션 기회도 쉽게 오지 않을 뿐더러 온다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 늘 연습해야 한다.”
-오디션에선 무엇을 보나.
“실력은 당연하고, 신체적인 부분도 많이 보는 편이다. 학교에서도 키가 큰 아이들에게 무용단을 권유한다. 암묵적으로 키가 작으면 무용단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인식이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키가 작다고 감정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수업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배움의 틀을 깨고 싶다. 무용은 종합예술이라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무대에 맞는 연기수업, 분장수업, 무대미술수업 등을 배웠으면 한다. 무용과 연관된 다른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학생들의 진로의 폭도 넓어질거라 생각한다.”
김유섭씨는 서울국제무용콩쿨과 전국신인무용대회에서 각 금상과 1등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수상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했던 것 만은 아니다.
-대회를 준비하며 힘든 과정은 없었나?
“전국신인무용대회를 준비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연습을 중단하고 일주일 째 병원에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연습실로 부르셨다. 무대를 보니 춤을 추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평소엔 웬만큼 아파도 참고 연습을 하는 편인데 그때는 내가 느끼기에도 연습을 하는 건 무리라 생각했다. 목에 깁스한 상태로 무용을 했는데 신기하게 통증이 점차 사라지며 자신감이 붙었다. 분명 몸이 아팠는데도 말이다.”
-통증이 사라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가 내 춤에 만족했을 때 아픔은 사라진다. 물론 후유증은 남는다(웃음). 연습자체가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거라 본다. 종일 연습해 너무 힘든데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를 외치게 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그만해도 되겠다 하면서 나는 또 춤을 추고 있다.”
-무용학과만의 스펙이 따로 있는지?
“실력만이 우리의 스펙이다. 더불어 인간성도 중요하다. 무용은 사람이 몸을 움직여서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인간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무용에는 많은 도구가 사용된다. 도구를 사용하되 관객들이 도구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춤에 집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텅 빈 무용학과 연습실에서 무용복으로 갈아입은 그와 다시 대면했다. 초면에 무용을 추게 되어 어색하다고 멋쩍게 웃는 것도 잠시, 음악이 나오자 그의 표정과 몸짓이 바뀌었다. 무용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마치 그 자신도 춤을 추기 위한 도구인 것 마냥, 잠시 김유섭은 사라지고 무용수의 호흡만이 연습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송민정 기자 minksong@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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