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 가난한 사람을 접한 곳은 지하철이었습니다. 그의 행색은 지저분했고 얼굴엔 핏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시선을 나누었습니다. 그저 눈빛으로 애처롭게 바라볼 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정심으로 가득한 내 눈을 그가 바라볼 수 있기를, 그래서 그를 불쌍히 여기고 있음을 알기를 바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됐을 때 조금의 물질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도움의 손을 내밀 때 먹을 것을 주기도 했고 약간의 돈도 주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그들을 안아주고 손잡아주는 것은 두려웠습니다.


이번 겨울방학에 인도네시아에서 한 해비타트 집짓기 봉사를 통해 저는 땀과 희망을 나누었습니다. 삽질을 하고 벽돌을 나르고 미장이질을 하는 것은 모두 땀의 나눔이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어 보이는 일도 손을 잡고 힘을 합치니 멋진 집이 만들어졌습니다. 집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습니다. 집이 없다는 것은 가정이란 안식처가 없다는 것, 정서적 안정을 주는 공간이 없다는 것임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행복하면 미소를 지었고 감동을 받으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그들이 처한 환경만이 다를 뿐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우리가 흘리고 있는 땀이 꿈이라는 집을 짓는 데 쓰인다는 생각에 열심히 삽질을 했습니다. 이 ‘삽질’은 분명 보통의 ‘삽질’과는 다른, 의미 있고 아름다운 삽질이었습니다.


이해의 진정한 뜻은 ‘아래에 선다는 것’(Under-Stand)이라고 합니다. 산악인 엄홍길 씨는 산에 오르면 산이 안 보이지만, 산 아래 서야 비로소 산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불쌍하다는 동정심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생각해보려는 이해와 공감의 마음이었습니다. 12일 동안의 추억들은 이제 저에겐 몇 분간의 꿈을 꾼 듯 아련하기만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감사함과 행복을 알게 해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신문방송학과 4 이우찬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