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천재로 잘 알려진 이제석씨는 지방의 한 대학을 나왔다. 전공 공부를 즐겼기에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쓴잔을 삼켜야 했다. 결국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고 국제광고제들을 휩쓸며 금의환향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청강생 신분으로 들은 서체 디자인 강의는 이후 애플 컴퓨터의 미려한 글씨체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얼마 전 언론에서는 소위 SKY대에 많이 보낸 고등학교를 크게 다뤘다. 친절하게도 합격자 수대로 고등학교 순위를 열거해 주었다. 때가 되면 연례행사로 특정 언론사 선정 대학평가결과가 발표되고 다른 언론도 비슷한 평가결과를 발표한다. 대학들이 언론 주도의 프레임에 갇혀 학생 맞춤형이 아닌 언론사 평가기준 맞춤형 대학으로 탈바꿈하다보니 대학별 특색이 점차 사라지는 느낌이다. 서로 경쟁하듯 언론사 평가기준에 맞춰 교수 승진기준을 올리는 구조가 계속되면서 교수의 관심은 자연히 강의보다 논문 준비로 쏠린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수는 더 이상 교육자가 아닌 연구원, 대학은 학교가 아닌 연구소라는 말도 있다.

  학생들은 어떤가? 등록금 마련도 만만치 않고, 대학 졸업은 곧 취직이라는 등식도 이미 깨졌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 생각을 해야 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학점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상대적으로 쉽게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학점이 후하다는 강의, 과제 부담이 적다는 강의를 선점해야 한다. 그래야 남은 에너지를 토플 학원과 고시 학원에서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1%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이끌어간다고들 한다. 그리고 그 창의적인 사람이 만든 새로운 변화를 우리는 혁신이라 부른다.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가 태어났다면, 이제석 씨가 대학 졸업 후 계속 한국에 머물렀다면 그들에게 천재라는 수식어가 어울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독창성을 찾아내거나 잠재력을 키워주기보다 이른바 스펙을 훨씬 더 중요시한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새롭게 도전하려 하면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 점수 더 올리고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에 매달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말한다. 입버릇처럼 우리 교육 이대로는 안 된다, 입시 위주 교육과 사교육의 병폐를 얘기하면서도 어느 고등학교가 어느 대학 몇 명 합격시키는지, 언론사 선정 대학평가에서 몇 위 할지에 더 조바심을 낸다.

  우리 대학에서 명품 강의, 명품 학생, 명품 교수를 육성하려는 계획이 있다니 반갑다. ‘명품’ 말고 더 그럴듯한 수식어가 없을까 하면서도 과연 ‘명품’의 프레임을 어디에 둘지 궁금해진다. 그 기준이 토익 몇 점 이상, 고시 합격자 몇 명 이상 배출이라는 지표로 가득 채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서 제2의 이제석과 스티브 잡스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는 세계적 교육 자문가인 켄 로빈슨(Ken Robinson)의 쓴소리를 되새겨본다. 중앙대가 먼저 우리 교육의 불편한 진실을 깰 수 있기를 바란다.

안지현 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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