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와 정치2]무관심 권하는 사회
  • 중대신문
  • 승인 2012.03.1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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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0대는 왜 정치에 무관심해 왔는가


정치참여는 취직 걱정 없는 선택된 이들의
‘한가한 취미’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정치에 대한 환멸감
  전두환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박정희 정권의 전례를 본받아 대통령 간접선거제를 실시했다. 각 지역에서 독재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한 사람들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모여 대통령을 선출했다. 1980년 8월 27일 장충체육관에서 실시된 제11대 대통령선거에서 전두환은 재적 대의원 2,540명 중 2,525명(투표율 99.4%)이 출석해 2,524명의 찬성을 얻어(99.99%) 당선되었다. 1명은 기표를 잘못해 무효표로 처리됐다. 이 선거가 국민대표성을 담보하지 못했음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부정선거문제도 심각했다. 막걸리 한 잔, 고무신 한 짝으로 유권자들의 표를 매수했던 50년대의 부정선거에서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표과정에 개입해 선거결과를 사전, 사후에 조작했던 60년대의 부정선거, 정보기관의 협박과 선거구 사전조정, 친정부 어용야당 급조와 선거구 임의조작을 통해 조직적으로 선거부정을 했던 70∼80년대 부정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와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폭력이 지속적으로 행사됐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거듭되는 정치파행과 군부권위주의 정권의 노골적인 폭력적 통치는 국민의 정치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국민은 시위와 같은 “거리의 정치”를 통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의사조차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거리의 정치’는 정권의 폭력적 탄압을 감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군부권위주의에 맞선 “거리의 정치”에 종교인. 지식인들과 함께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 학생들이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4.19시민혁명. 6.3운동, 민청학련운동, 부산.마산민주화운동.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역사에서 청년 학생들이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은 역사가 말해주는 바이다.
 

정치적 허무주의, 스펙 쌓는 20대의 등장
  87년 민주화 이후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주의적인 선거가 실시되면서 마침내 대표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 갖추어졌다. 그렇다 할지라도 각종의 부정적 선거양상, 예컨대 이념 공세로 꼬리표 붙이기와 집단 왕따 시키기, 지역감정 유발로 선거를 지역구도에 함몰시키기, 우세한 여론동원력을 가동해 네거티브 캠페인 감행하기 등으로 치러진 선거가 과연 국민 대표성와 민주적 정당성을 온전하게 담지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훨씬 교묘해진 반민주적 정치형태는 정치에 대한 염증을 낳고 정치적 허무주의를 만연시켜 광범위한 정치적 무관심층을 양산해냈다. 청년, 학생들도 ‘거리의 정치’에 나설 적극적 동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일상의 틀에 갇혀 버렸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었으므로 청년, 학생들은 ‘거리의 정치’ 대신에 도서관을 찾게 되었고 사회적 공적 관심 대신에 스펙 쌓기와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개인적 성취에 몰입하게 되었다.
IMF 국난 후 불어 닥친 장기불황과 ‘고용 없는 성장’은 전반적인 사회양극화의 심화와 개별화되고 원자화된 개인을 무한경쟁으로 밀어 넣는 촉매제로 작용하였다. 무한경쟁자의 핏발선 모습들이 거리와 캠퍼스를 메웠다. 이들에게 정치참여는 취직 걱정 없는 선택된 청년, 학생들의 ‘한가한 취미’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청년, 학생들에게 팽배한 정치적 무관심은 이러한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선거에 무관심한 한국사회
  쉐보르스키는 선거가 민주주의적 의미를 가지려면 선거결과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결과가 예측될 수 없어야 하고 여론조사에 의해 예측된 결과들까지 언제든 바뀔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결과의 불가측성은 곧 선거결과를 결정할 유권자들의 선택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고 어떤 요인에 의해서든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영남지역에서는 새누리당 후보, 호남지역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의 당선확률이 9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될 수 있다면 이런 선거를 ‘결과가 열린 선거’, ‘불가측적 선거’라 하기 어렵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적 선거이되 실제 내용에서는 심각한 결격사유를 갖고 있다.
  대의제 하에서 선거결과의 예측가능성은 정당성의 약화뿐만 아니라 선거참여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뻔한 선거에 참여할 사람들이 누가 있겠냐는 것이다. 역대 선거 결과는 선거가 박빙으로 전개되어 선거결과가 예측하기 어려울 경우 선거참여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지면 자신의 투표가 선거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사표심리가 작용하여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987년 대선이 후보간 박빙의 승부로 전개되면서 대통령선거 투표율 89.2%를 기록하였지만 지난 2007년 대선의 경우 1, 2위 후보간 격차가 커지면서 투표율은 63.0%까지 떨어졌다.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이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75.8%였는데 18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46.0%에 지나지 않았다.
  투표율의 하락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는 대의제의 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국민의 대리인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대표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대에 반하는 정치행위를 거듭함으로써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정치혐오 그리고 참여무력감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투표율의 급속한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1년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투표율은 OECD평균에 휠씬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율 하락이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의 하락의 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고학력자와 저연령층의 투표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태동 엿보기
  그러나 최근 급속히 활성화되고 있는 SNS를 통한 정치참여와 20∼40세대의 적극적 투표행동은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행동’으로 자각해 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치고 있는 '글로벌 앵거'(global anger) 현상이 한국에서는 'Occupy Wallstreet'가 아니라 'Occupy Vote'로 한층 성숙된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부터 불기 시작한 투표참여운동은 2011년 실시된 두 차례의 재보궐 선거에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안철수 돌풍, 박원순 바람을 만들어낼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젊은 층의 투표참여 행동은 야권의 질서를 재편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의 승패까지 바꿔버렸다. 구조적 위기에 처한 대의제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의 대리인들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투표효능감을 갖도록 스스로 변화하고 쇄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표참여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사전투표제나 부재자투표제의 개선, 투표시간의 연장, 전자투표제 등의 도입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의 인식전환이다. 투표를 지루하고 짜증나는 공적 의무가 아니라 유쾌하고 상쾌한 권리행사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고성국 박사(정치평론가)

정희진 기자의 참고서
서로 어깨를 걸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세대를 막론한 정치적 무관심이 논란거리다. 오늘날 문제시되는 20대의 정치적 무관심도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시대를 이끌어야할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이 함의하는 바는 더욱 크다.
  과거의 젊은 세대를 움직인 원동력은 공동의 적이었다. 그들은 일제의 탄압과 독재 정권에 맞섰다. 하지만 지금의 20대에게는 공동의 적이 없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가치도, 함께 타파해야할 목표물도 없다. 다원화된 오늘날 사회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상반된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이 공존하며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단체가 존재한다. 다양한 가치들이 편재하는 가운데 20대가 동질감을 갖고 함께 성취할 보편적 가치는 사라졌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과거 활발했던 20대의 정치 참여가 한풀 꺾인 계기로 IMF 위기를 지목한다. 한국은 IMF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장 자유화를 택했고 신자유주의적 가치들을 상당수 받아들였다. 자유로운 경쟁을 장려하는 신자유주의는 20대들에 즉각 영향을 끼쳤다. 20대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 계발에 몰두했다. 1990년을 기점으로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급증했다는 점은 이때부터 20대의 자기계발이 왕성해졌다는 점을 드러낸다.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서동진 저)에는 신자유주의가 20대 정치참여에 미친 영향이 나타나 있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20대는 정치참여보다 자기 계발이 익숙하다. 정치에 무관심한 스스로에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정치 참여 여부를 고민할 선택권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세대 내 경쟁도 20대 정치 무관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청년실업이다. 100만에 육박하는 20대가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0년이 넘도록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연대하지 않는 20대의 모습이다. 취업난이 세대 모두의 고민임에도 20대는 개인적인 돌파구를 통해 문제에 맞선다. 토익을 공부하고 수험서를 뒤적여 개인적으로 취업난을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취업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20대 강명훈씨(심리학과 3)는 “진로와 취업 등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에서 20대가 하나로 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을 희망하는 20대 다섯 명 중 한 명은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열악한 현실에서 20대는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20대가 세대 내 동질감을 회복하고 세대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일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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