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독일의 세계적 문호 괴테의 탄생 2백50주년을 맞이해 독일의 저명한 주간지‘deutschland’에 실린 글을 요약한 것이다. 문호 괴테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인간 괴테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하고 있다.
<편집자주>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 역시 모든 것을 이루지는 못했다. 개인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전인적(全人的)인 삶을 살지 못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그는 ‘우주에 관하
여’라는 그다지 겸손하지 않은 제목의 야심적인 소설을 1779년에 계획했지만, 구상단계에서 더 이상 진척시키지 못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방대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색채론’을 토대로 뉴우튼의 빛의 이론을 평생동안 반박했는데, 근대 자연과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그는 완전히 잘못된 길을 걸어갔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프랑스 혁명에 자극받아 쓴 몇 개의 드라마는 관객들의 반향을 전혀 불러 일으키지 못했으며, 몇몇 신화적인 인물들을 토대로 서사시를 쓰고자 했지만, 결국 그 인물들을 토대로 아무 것도 그려내지 못했다.
하지만 괴테는 오류와 실패 속에서 아주 심하게 좌절하거나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오류와 실패를 인간적인 노력에 동반되는 필연적인 현상
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인간적인 노력, 말하자면 활동하는 존재 그 자체를 최고의 자산으로 생각했다. 수십종의 번역서가 나올 정도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괴테의 대표적인 드라마 ‘파우스트’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시구들이 나오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노력하고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 괴테의 개인적인 노력의 중심부에는 글쓰기가 있다.

“노력하면 방황하기 마련이다”

그는 글쓰기를 삶의 위기나 고비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았다. 즉 그에게 있어 문학과 삶은 구별되지 않고 늘 함께 하는 것이었다. 괴테는 오류와 실패를 수용한 끊임없는 개인적인 노력, 즉 부단한 수정과 교정을 토대로 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구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괴테는 글쓰는 자신의 생활방식을 행정관청의 조직처럼 체계화시킨다.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빨리 처리하고, 빨리 처리할 수 없는 것은 처음에는 그대로 두었다가, 나중에 처리된 것으로 간주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적절한 시점에 다시 처리한다.
예를 들어 그는 4주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던 반면에, ‘파우스트’는 거의 60년만에 완성하였다. 이처럼 그의 삶과 문학활동 속에는 격렬한 열정과 지속적인 호기심, 그리고 이 둘과 함께 무한한 인내심이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괴테의 저술활동의 특징들인데, 오류와 실패를 수용한 끊임없는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의 저술활동의 목표 또한 수정과 교정을 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보려는 부단한 인간적인 노력이 바탕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만년의 그는 “최근에 와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들이란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마치 과거에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물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류와 실패를 수용한 노력의 결실

그는 기존의 사물을 부단히 새로운 시각으로 통찰하는 차원을 넘어, 심지어 자신의 삶을 시로, 현존하는 것을 시대를 초월하여 통용되는 격언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변환자(變換者)가 되었다. 이와 같이 그는 끊임없는 오류와 실패 그리고 부단한 시각교정을 기초로 하여 인간의 실존을 다룬 백과사전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가 탄생한지 250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아직도 시사하는 점이 있는가를 묻는 것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질문은 없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전인(全人)

“나는 행복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완전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 이제 나 또한 그렇게 되고 싶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라고 괴테는 이탈리아인에 대한 느낌을 적고 있다. 개인적인 삶의 목표로서의 완전함 - 괴테는 이러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였는가? 이에 대해 다른 경우에는 지극히 괴테로부터 감동을 받았던 토마스 만도 괴테의 다양한 성향과 취미에 대해서는 “매우 광범위하고 아주 다방면에 관심을 기울였던 비전문가들 가운데 한 사람, 다시 말해 범아마추어적인 인간”이라는 지극히 아이러니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괴테는 독일 문학의 역사 속에서는 하나의 전인(全人) - 더구나 처음이자 마지막 전인(全人) -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장르, 다시 말해 서사시, 산문 그리고 서정시 등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작품을 만들어 후세에 남겼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투와 테마의 변화가 족히 60년을 넘고, 시구와 형식 또한 그만큼 다양하며, 가장 비범한 것이 연출되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는 그의 시문학 작품들을 감상해보면 괴테가 독일문학의 전인(全人)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오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행복을 약속하는 전인적(全人的) 삶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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