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이란 이름 앞에는 항상 고유 수식어가 따른다. ‘글 쓰는 요리사’. 글 쓰는 일을 전업으로 삼던 30대에 돌연 몸 담은 잡지사에 사표를 내고 이탈리아로 훌쩍 떠났다. 이 남자, 베짱도 두둑하다. 그리고 10년. 요리사로서의 입지만 다지기도 쉽지 않은데 그는 벌써 10권의 책을 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박찬일,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묘한 궁금증을 품고 2월의 마지막 날, 홍대에 위치한 그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노란 전등빛이 만드는 따뜻한 분위기 아래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 사람이 보였다.

 

6호선 상수역 1번 출구. 합정역 방향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걷다 오른쪽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돌아선다. 개성 강한 찻집과 밥집이 즐비하다. 조금 걷다 보니 통유리에 벽면이 책으로 가득한 북카페 ‘꼼마’가, 같은 건물 4층엔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꼼마’가 보인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니 주방 앞에서 손님에게 나갈 음식을 준비하는 박찬일 셰프가 보인다.
-1층의 북카페 이름이 ‘꼼마’이고 이 레스토랑 이름은 ‘라꼼마’다. 사연이 있나?
“원래 두 가게 모두 문학동네가 운영했어요. 저는 라꼼마의 주방장이었고요. 그러다 얼마 전 라꼼마가 독립해 현재는 제가 운영을 맡고 있어요. 같이 운영될 때는 제가 만든 티라미수를 꼼마에서도 팔고 그랬어요. 인기가 좋았었죠.(웃음)”
-꼼마, 라꼼마는 무슨 뜻인가?
“꼼마라는 건 콤마, 쉼표라는 뜻이에요. 콤마가 원래 이태리어거든요. 손님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쉬었다 가셨으면 하는 뜻에서 작명했습니다. ‘라’는 정관사, 영어로 말하자면 the와 같은 거예요.”

술이 전부였던 대학생 요리사가 되기까지

-어릴 적부터 꿈이 요리사였나?
“아니에요. 전 요리에 ‘요’자도 몰랐어요. 참외를 먹을 때 누가 깎아주지 않으면 껍질 째 먹었어요. 그 정도로 주방 일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럼 학창시절의 관심사는 뭐였나.
“술이죠.(웃음) 고등학교 때는 농구하고 막걸리 마시러가고 그랬어요.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선생님이 절 그렇게 싫어하셨죠. 대학 땐 학점이 거의 선동률 방어율(0.80)이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땐 정치적으로 격변의 시기였어요. 전 시위 현장이나 기웃거리고 선배들과 술잔 부딪히며 세상 얘기하는 그런 학생이었어요. 중앙대를 9학기나 다녔는데 그래도 졸업학점이 안되더라고요. 결국 졸업은 못했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사회로 진출한건가.
“졸업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게 글쓰는 것 뿐이었으니까. 잡지사에 들어갔어요. <주부생활>에서 기자를 하는데 정말 못 해먹겠더라고요. 그래서 뛰쳐나왔죠.”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하루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났어요. 건강이 나빠지고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요. 제가 내성적이라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근데 기자는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이잖아요. 돌아다니면서 특종도 잡아야하고. 그래서 그만뒀죠.”
-요리의 길로 접어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집에서 식당을 했었어요. 세상 어머니들이 다 그러시겠지만 저희 어머니가 음식을 꽤 잘하셨거든요. 그런 배경도 있었고, 또 제가 먹는 것에 대해서 유달리 까다로웠어요. 주문한 음식이 청결하지 않게 나온다거나 손님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지 않으면 못 참았어요. 그런걸 보고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하고 고민하다 결국은 ‘내가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수많은 종류의 음식 중 이탈리아 요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 때 하루는 수업에 안 들어가고 호암아트홀로 영화를 보러 갔었어요. <일 포스티노>란 영화였는데 배경이 이탈리아였어요. 정말 좋더라고요. 단순히 눈요기로 좋은 게 아니라 정말 저 나라에 가고 싶고, 그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이야 여행도 많이 가지만 그땐 정보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남들보단 이탈리아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던 것 같아요.”
그렇게 홀로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가던 그는 잡지사 기자 옷을 벗어던지고 1998년 초여름, 이탈리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탈리아 경험은 신혼여행 때 한 번. 지금껏 먹어본 양식 요리라고는 소시지에 에그 스크램블, 햄버거 스테이크가 전부였던 그에게 이탈리아로의 요리 유학은 힘든 결심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그렇죠. 그때의 제 직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보수도 넉넉했거든요.(웃음)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어요. 워낙 힘들기도 했지만 이탈리아행을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이 힘들진 않았나.
“힘들었죠. 이탈리아어를 하나도 못하는 상태에서 가니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전 유학생이 아니고 오직 요리만 배우러 간 사람이니까 더 그랬어요. 게다가 결혼하고 아이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됐어요. 고생 많이 했죠.”
-요리 학교에선 어떤 걸 배웠나.
“학교가 피에몬테 지방(이탈리아 북서부)에 있었어요. 이탈리아 요리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 배웠지만 전 와인 과목에 가장 관심이 있었어요. 그곳이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이거든요. 사실 전 그런 것도 모르고 갔어요.(웃음)”
-특별히 와인 과목을 좋아한 이유가 있나.
“와인이 굉장히 과학적이잖아요. 포도의 당분이 효모의 힘을 빌어 에틸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어 술이 된다니.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수많은 와인이 생긴다는 자체가 놀라웠죠.”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 이탈리아에서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을텐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요. 이탈리아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이 널렸거든요. 그런 곳에서 외국인이 그것도 이탈리아 요리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힘들죠. 이탈리아 사람들이 유달리 보수적이기도 하고요.”
혈혈단신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해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로 3년을 수련했다. 2002년 귀국 후엔 청담동 ‘뚜또베네’, 신사동 ‘트라토리아 논나’ 등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셰프로 있었다. 7~8년 동안 강남의 여러 레스토랑을 옮겨 다니며 그는 소위 ‘스타 셰프’로 떠올랐다. 재료를 깐깐하게 고르기로 소문난 박찬일이 강남을 찾는 손님들에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귀국 후 셰프로 있었던 레스토랑들이 다 장사가 잘됐다.
“요리를 할 때 기존의 이탈리아 식당과 다르게 이탈리아 요리의 본령에 대해 좀 더 충실하려고 노력했어요. 신선한 재료, 가급적 그 지역에서 난 재료, 그런 것을 많이 강조했어요. 기존의 양식당이나 한식당들은 그다지 ‘로컬푸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는 적극적으로 ‘로컬’의 개념을 내세웠어요.”
-왜 로컬푸드를 중요하게 여겼나?
“모든 재료는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타이밍이 있어요. 예를 들어 굴을 통영에서 가지고 와서 따잖아요. 그럼 그 굴은 하루만 향이 진하고 맛있어요. 이틀째 되면 상하진 않지만 맛과 향이 사라져요. 먼 나라 어느 지방의 굴이 유명하다고 해서 수입해 오는 건 돈 낭비, 시간 낭비, 재료 낭비죠.”

정통 이탈리아 요리사 글 쓰는 요리사가 되다

-유학생활 중에 글을 계속 썼나.
“못 썼죠. 한동안 펜을 잡지 못했어요. 책 읽을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었겠어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재료를 손질하고 선배들의 보조역할을 해야 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가?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후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 전까지 글을 쓰고, 런치가 끝나면 짬을 내서 또 썼죠. 지금은 주방일보다는 마케팅 활동을 주로 하니 글 쓸 시간은 많은 편이에요.”
-어떤 글을 주로 쓰나.
“처음엔 제가 관심 있던 와인에 관련된 글을 많이 썼어요. 와인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청탁이 꽤 많이 들어왔어요. 요리사를 직업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련된 글을 쓰게 됐죠. 그렇게 잡지나 신문에 꾸준히 연재하다 보니 원고가 어느 정도 모여 책으로도 발간하게 됐고요.”
-박찬일 셰프에게 글쓰기와 요리는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는가.
“서로 자극을 주는 관계인 것 같아요. 글이란 것은 희미해져가던 기억이나 생각들을 남기는 작업이잖아요. 저는 요리칼럼을 자주 쓰는데 글을 쓰다보면 언행일치를 할 수밖에 없어요. 글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쓰는데 실제 행동이 글과 다르면 안되겠죠. 말과 행동을 같이하려고 노력하니까 요리하는 데 있어서 자극이 되요.”
-두 개의 공통점이라면.
“충분히 준비돼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거죠. 아는 만큼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과물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두 드러나요. 글을 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인생에 대해서 고민이 있었는가, 다상량 했는가에 대해 다 표시가 나죠. 음식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음식을 보면 그 요리사의 철학을 다 알 수 있어요.”
-최종적인 꿈은 무엇인가.
“죽을 때까지 책 좀 많이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책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전 젊은 시기에 독서를 안 하고 살았어요. 맨날 술만 마셨죠. 그것도 지금 보면 제 인생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그 시간에 책을 읽을 것 같아요. 요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렇게 좋은 책을 예전에 왜 안봤을까’ 하고 속으로 억울해 해요. 지금 봐서 좋은 책도 있지만 젊을 때 보면 좋은 책들도 분명 많거든요. 영어단어 5000개를 외워야 한다면 2000개만 외우고 나머지 3000개 외울 시간에 책을 보세요. 나중에 저처럼 답답해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요.”

 

박찬일(48)=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85학번. 책 읽고 세상 얘기하길 좋아했지만 아이러니하게 전공과목이 적성이 맞지 않아 학업에 열중하진 못했다. 9차 학기를 다녔지만 결국 졸업은 포기하고 바로 월간지 <주부생활>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 역시 내성적인 그에게는 맞지 않았다.
30대 중반, 자신이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고민 끝에 요리사가 돼 보자고 결심했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또 유난히 까다롭기도 했다. 곧장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으로 날아갔다. ICIF 요리학교에서 이탈리아 요리와 와인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시칠리아로 건너가 레스토랑 ‘파토리아델레토리’에서 스승 주세페 바로네에게 현장수업을 받게 된다. 2002년 귀국해 강남 일대에서 스타 셰프로 이름을 날리다 현재는 홍대 앞 ‘라꼼마’의 오너 셰프로 있다. ‘글 쓰는 요리사’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이탈리아 요리와 와인에 관한 칼럼을 각종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드라마 <파스타>가 재밌는 이유 … 박찬일이 있었기 때문

드라마 <파스타>에 유명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인 셰프가 손님들에게 피클을 내지 말라고 요리사들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이는 박찬일 셰프의 에피소드에서 나왔다. 그는 “유학 중 하루는 이탈리아 슈퍼마켓에 가서 피클을 찾았다. 주변 매장을 온통 돌아다녀도 피클은 없었다. 그때 이탈리아 식당이나 피자 가게에는 피클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달라는 드라마 제작진의 주문에 박찬일 셰프는 선뜻 피클 에피소드를 꺼냈다. 이 경험담은 드라마에 그대로 녹아 시청자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드라마 <파스타>는 이탈리아 음식을 전문적이면서도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일반인들에게 가깝지 않았던 파스타인 ‘알리오 올리오’와 ‘봉골레’등의 메뉴를 친숙한 음식으로 만들었다. 박찬일 셰프는 “알리오 올리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세계적인 파스타다. 마늘이라는 단 하나의 양념으로 파스타 전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파스타다”라고 말했다. 이를 서숙향 작가가 초반 에피소드로 적극 활용해 파스타의 기본을 시청들에게 이해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파스타와 관련된 그의 체험은 특별했고, 파스타는 그만의 표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박찬일의 글은 독자를 빨아들인다. 그의 경험을 엮은 저서 『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있으면 이야기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재밌는 드라마가 됐다. ‘파스타’의 뒤에는 박찬일 셰프와 그의 책 『보통날의 파스타』가 있었다.

 

그의 글을 보면 군침이 돈다


『박찬일의 와인 셀렉션』
우리가 항상 동경하는 술이지만 선뜻 다가가기 힘든 술, 와인. 마실 때마다 더 알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박찬일의 와인 셀렉션』에는 와인에 관한 사회학, 상식, 음식과의 조화가 담겨있다. 저자가 직접 시음한 와인을 추천해 쉽게 와인 문화에 다가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와인 안내서.

『보통날의 파스타』
레시피만 소개하는 흔한 요리책과는 다르다. 『보통날의 파스타』는 파스타 레시피와 더불어 파스타와 관련된 저자의 체험과 유용한 요리팁까지 소개한다. 파스타와 어울리는 와인도 함께 소개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드라마 <파스타>의 에피소드가 바로 이 책에서 나왔으니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별미.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저자는 30세 중반 늦은 나이에 요리를 배우기 위해 시칠리아로 떠났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의 스승 주세페바로네의 식당에서 실습을 할 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파스타를 뒤집어쓰기도 했고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이탈리아 요리 현장에 뛰어든 한국인 남자의 고군분투 셰프 도전기.

『어쨌든 잇!태리』
이탈리아를 맛보고 싶은가? 『어쨌든 잇!태리』는 이태리에 관한 환상을 없애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담백하게 전한다. 현지 생활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여러 음식을 맛본 체험기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저자 특유의 재미있는 비유들은 이탈리아 현지의 생생함을 더해준다. 이태리를 친숙하게 해주는 맛있는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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