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왜 하냐는 얘기가 있다. 장관을 지낸 것을 정치했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하는 일도 정치라고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넓은 의미에서는 사소한 의견을 내는 것도 정치다. 또한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다. 그래서 난 정치를 한다."

새누리당 비대위원 10명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사람. 이상돈 교수다. 교수가 정치판에 들어선 것에 대해 여기저기 크고 작은 목소리들이 나온다. 어떤 이는 ‘교수가 무슨 정치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어떤 이는 ‘정치참여는 연구의 결과물을 사회에 적용시키는 일’이라며 격려의 목소리를 낸다. 당사자인 이상돈 교수에게 물어봤다. “왜 정치를 하시나요?” 이 교수가 답했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오늘도 그는 비대위원들과 회의 자리에 앉는다. 지난 2월 21일. 법학관 11층에 위치한 이상돈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바쁜 스케쥴을 증명하듯 그의 책상에는 여러 서류들이 너저분하게 놓여져 있었다.  

 

권위적일 것이라는 첫 예상부터 빗나갔다. 처음 본 기자들에게 선뜻 발렌타인데이에 받은 초콜릿을 건넨다. “비싼거야. 빨리 먹어 다 없어지기 전에.” 긴장이 감돌았던 공간에 웃음이 번진다. 초콜릿을 두알 우물거리고 있자니 과연 이 분이 정치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치 않던 분이 맞나 싶다.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상돈

-어떻게 해서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맡게 됐나?
박근혜 위원장의 제의 때문이었다.
-박근혜 위원장과는 친분이 있었나.
평소 박 위원장과 시국관, 정치 발전에 관해 견해를 나눴었다. 많은 언론에서 나와 박 위원장이 무슨 관계이냐고 묻던데(웃음). 오랫동안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 가끔 자리를 같이 하며 이명박, 노무현 정권에 대한 문제에 얘기했다. ‘앞으로의 정치가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같았다.
-그것 뿐인가.
박 위원장이 평소 내 글을 많이 읽었다고 들었다.
-구체적인 제의를 받은 것은 언제쯤인가?
공식 발표되기 전날 오후 3시에 박 위원장과 통화를 했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고, 계속 비대위원 후보로 내 이름이 오르내리던 터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전화가 와 흔쾌히 승낙했고.
-새누리당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정치쇄신분과, 그 중에서도 공천제도 기준과 후보자 선정 제도 개정 등의 일을 했었다. 지금은 일이 거의 끝났다. 요즘은 일주일에 2번씩 비대위원들과 만나 회의를 하는 정도다. 비대위원은 임시직이다. 4월 총선이 끝나면 비대위원 생활도 함께 끝난다.
-정치인이 되기 전과 된 후의 생활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사람이 내 팔을 붙잡고 5분만 얘기하자고 하더라(웃음). 예전과 가장 달라진 점은 발언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뭐라고 한 마디만 하면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 파급력이 커지는 것 같다. 이젠 내 생각이 개인 의견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 가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특히 기자들 앞에서는.
-좋은 소리보단 쓴 소리가 많이 들리는 정치판이니 발언이 조심스러울 것 같다.
사실 나름대로 조절을 하고는 있지만 평소 신조대로 말하는 것은 그대로다. 나는 원래 내 생각을 활발하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알고. 그 사람들에게 가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파급을 일으키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상적인 얘기다. 가끔 열 받아 과도하게 말할 때가 있지만(웃음).
-비대위원으로의 변신이 힘들진 않았나.
글쎄.. 어떻게 보면 준비가 됐었던 것 같다. 신문사 논설위원도 오래했고 정치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 덕분에 변화가 크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현재 새누리당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상태라 어려움이 있긴 하다.
-어려운 면이라면 구체적으로?
생각 같아서는 당이라는 것이 내 뜻대로 갔으면 좋겠지만 다양한 구성원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하고 합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의를 할 때 충돌이 있을 법도 한데.
다양한 견해가 있는 정도지 충돌까지는 아니다.
-정치에 입문한 것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별안간 벼락이 떨어진 줄 알았을 거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얘기하지 않아서 놀랐던 사람들이 많다. 한번은 어머님이 텔레비전을 보시다 날 ‘이명박 저격수’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셨던 적이 있다(웃음). 저격수라니. 놀랄 법도 하다. 그래도 많이 지지해주는 편이다.
-박 위원장의 이야기를 잠시 언급했는데. 언론에서 비치는 박근혜와 실제 박근혜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밖에서 20~30대가 보는 박근혜는 어떤 사람인가? 이들은 박 위원장을 대중과는 거리가 있고 딴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여기는 것 같다. 그런 시각은 문제가 있다.
-현실과 괴리됐다는 견해도 있는데.
절대 아니다. 박 위원장은 여론에 귀를 많이 기울인다. 특정 언론에 구애받지 않는다. 내가 볼 때 남녀를 불문하고 박 위원장처럼 품격이 있는 사람은 현대에 드문 것 같다. 정치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새 정치판은 격이 없다. 말도 생각 없이 막하지 않나. 박 위원장은 24시간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언론에 집중돼있는 사람이다. 자유가 없어서 제약이 있다. 그래서 대중과의 만남에 제한이 있고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격이 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차기 대권 주자로 박 위원장이 손색없다고 보는 것인가?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은 대권자로 적합하지 않다. 박 위원장은 부정, 부패, 비리를 저지를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현재 나와 있는 잠재적 후보자 중에서는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준석 비대위원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이준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작은애가 27살이니 비슷한 또래인데. 그 친구 참 대단하다. 사전에 아무 준비가 안 된 채로 고대녀와 2시간을 토론하더라. 나도 깜짝 놀랐다. 그 친구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문제를 알려주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엔 이상돈 교수 외에 9명의 비대위원이 더 있다. 그 중 젊은 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은 단연 이준석 비대위원. 이 비대위원은 27세 젊은 기업인으로 클라세스튜디오와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 고려대 전 문과대 학생회장으로 알려진 김지윤씨와 맞짱토론을 벌여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라니?
한국에선 읽고 쓰는 교육이 많지 않다. 그게 바로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이다. 그 친구가 카이스트를 자퇴하고 하버드에 진학했다고 들었다.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아 이렇게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많이 읽고 토론했을 테니.
-비대위 구성이 최연소 이준석 비대위원(27세)과 최고령 김종인 박사(73세)로 연령층이 다양한 편이다. 뜻을 함께 하지만 충돌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이준석 비대위원은 걱정이 됐다. 그를 뽑겠다는 발상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에선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보더라. 미디어 노출로 한계점을 보이거나 사고나 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웃음). 생각했던 것 보다 곧 잘 하더라. 나머지 비대위원들과는 시국관이 같은 편이다. 충돌이나 갈등 보다는 공유하는 부분이 더 많다.
-나이차이가 있으니 비공개자리에선 발언권에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나이가 적건 많건 상관없다. 이준석 비대위원도 발언을 많이 한다. 가끔 눈치 보지 않고 대담하게 말해서 뜨끔하기도 한다(웃음).
- 4월 총선 전망은.
어렵다. 최근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참패를 했다. 당명과 지도부가 바뀌었지만 4월 총선은 어려울 것 같다.
-당 내의 분위기는 어떤가?
과거보다는 굉장히 좋아졌다. 이제는 당의 존폐가 위협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 구성원 모두 다시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다.

인간 이상돈

-어릴 적 꿈이 기자라고 들었다.
사실 글쓰기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일간지 논설위원으로도 8년 동안 있어봤다. 중대신문이나 다른 언론에도 꾸준히 기고를 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기자가 됐다면 실패했을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한국의 언론 환경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가 않다.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칼럼리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한국에선 아직까지 그게 어려운 것 같다.

1960년 4월 19일, 시위대가 정보 기관지와 서울신문사 사옥에 불을 지르고 경향신문이 폐간되는 등 군사정권이 한국 언론을 위협했던 그 때. 초등학생이었던 이상돈은 종로 한복판에 있었다. 피흘리는 학생들과 총소리로 뒤섞인 그 곳에서 그의 언론관은 싹텄다.  
-그 때 언론인이 되겠다고 꿈꾼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문사가 불타던 것을 보고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어렸을 적 환경이 지금의 칼럼니스트 같은 면모를 만든 것이 아닌가.
서울 한복판 종로구청, 정부청사가 있던 곳이라 정치, 사회, 역사 문제에 빨리 눈을 떴다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해서 법대를 왔다(웃음).
-단순히 공부를 잘해서?
경제학과가 수학을 더해야 한다고 해서 지원을 못했다(웃음). 법 공부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해보니 재미가 없어서 상당히 힘들었지만. 판사, 검사는 내 성격상 못해먹겠더라.
-이상돈 교수님처럼 막상 대학에 와보니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나.
전공이 100% 자기 적성에 맞는 친구들이 있나? 그렇지 않을 거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기가 원하는 과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또 와서도 적성에 안 맞을 수 있다. 이러한 학생들은 지금부터라도 적합한 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법과 학문의 시험공부 체제가 나와 맞지 않았고 적성도 물론 그랬다.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했다. 지금은 무엇이 가장 적성인지를 생각하고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비대위 체제가 끝나면 주로 정치 쪽에서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글 쓰는 교수로 돌아갈 것인가.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실 잘은 모르겠다. 남들이 물어보면 흐름에 맡겨져 있다고 한다. 내 의사대로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또 내가 안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과거처럼 활발하게 글쓰기는 힘들겠지만 금년까지는 강의, 연구와 더불어 비대위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것이 흐름 아니겠는가.


이상돈(62)= 1951년 부산 출생. 6.25전쟁 중 태어난 ‘피난동이’다. 지금의 종로구청 청사가 있는 수송국민학교와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군 제대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튤레인 대학과 마이애미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3년 9월에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 2001~03년에는 법대 학장을 지냈다. 현재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며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당개혁에
나선 교수들


정당개혁에 나선 교수는 이상돈 교수뿐만이 아니다. 대표적 인물로 (사진 왼쪽부터)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김종인 교수(한국외대), 조동성 교수(서울대), 이양희 교수(성균관대)가,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에 김호기 교수(연세대)가 있다.
김종인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 석좌교수로 있다. 김 교수는 이상돈 교수, 조동성 교수와 더불어 당 쇄신을 주도하는 3인방으로 불린다. 그는 예전에 국회의원, 대통령 경제수석 등으로 정치활동에 다양하게 참여했다. 이상돈 교수와는 전부터 시국관을 공유하며 친분을 쌓은 바 있다.
조동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다. 그는 매경이코노미에서 뽑는 ‘한국의 경영대가’에서 항상 5위안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국가 경영전략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조동성 교수는 인재영입분과 위원장으로 새누리당의 참신한 인재선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양희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이 교수는 2007년 우리나라 최초로 유엔의 아동권리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현재 비상대책위원이 되어 아동, 복지, 취약계층의 인권신장을 위해 일하고 있다.
김호기 교수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다. 그는 이번에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로 임명됐다. 그는 경향신문 ‘이상돈·김호기의 대화’에서 진보 성향의 입장으로 취재원을 만나 3자 대담을 나누며 이상돈 교수와 많은 소통을 나눴다. 지금은 경향신문 오피니언 면에서 ‘김호기의 정치시평’에 기고하며 언론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상돈 그의 독서관은 … “교수들 글은 재미없어 못 읽지” 

이상돈 교수는 다양한 독서를 토대로 100여건의 법 분야와 관련된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1983년부터 <미국의 헌법과 연방대법원>을 시작으로 약 10편의 책을 발간했다. 1995년에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이 되면서 8년간 약 430개의 사설과 칼럼을 썼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 기고를 해왔다. 최근엔 진보성향의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과)와 초대손님을 만나 소통하는 내용을 담은 <사람을 만나다 시대를 만나다>까지 발간하며 저널리스트적인 면모를 뽐냈다. 독서를 즐겼던 그는 글쓰기에 능통하다.
-글 쓰는 일을 즐기는 편인가.
별로 힘들어 하지 않았다. 스스로 글 쓰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즐겨 쓰니 잘 써지더라. 어려우면 못 쓰는 거다. 칼럼의 경우 저널리스트처럼 쓴다. 사실 일반적으로 교수들의 글은 재미가 없어서 읽기 힘들다(웃음)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글을 쓰는 것이 백 퍼센트 창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글들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신의 계시를 받아쓰는 게 아닌 이상 백 퍼센트 창작은 없다(웃음)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은데.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그렇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글도 잘 쓴다. 책 안 읽는 사람은 글을 못 쓸 수밖에 없다. 안 읽어서 그렇다.
-글쓰기는 책 읽기가 근본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많이 한 사람은 글을 잘 쓴다. 늦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안하는 것보다 지금 바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흘러 잃어버리기 전에 고전부터 섭렵해라.

 

“감명깊게 읽은 책? 가장 바보 같은 질문이야”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답을 못하겠다는 이상돈 교수. 그는 추천을 받지 말고 소설, 비소설 모두 고전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독서를 섭렵할 것을 권한다. 이를 보여주듯 그의 연구실에는 책이 굉장히 많았다.
-요새 책도 자주 읽고 글도 쓰고 있나.
비대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요즘은 책을 잘 못 읽게 됐다. 또 정치와 관련된 글을 쓰면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2달 전부터 가급적 안 쓰고 있다. 올해에는 비대위원으로 일을 열심히 하고 끝나면 책도 읽고 글도 다시 쓸 계획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추천한다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알려 달라’ 이건 가장 바보 같은 질문이다. 난 답을 못하겠다.
-왜 답을 못 하는가.
향락적이고 감각적이기만 한 책을 빼고는 다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추천 받을 필요 없이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
-재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학생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학업이다. 책을 많이 읽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을 권한다. 특히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의 경우 좋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곳에서 나오는 파편화 된 지식보다는 책을 통해서 깊은 지식을 얻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는 국내·외 명문 대학과의 차이는 여기서 나는 것 같다. 
-요즘 대학생들은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젊은이들이 회화 공부하려고 강남에 있는 학원을 다니는데 이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생각해보라. 영어로 된 책을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거다. 학원가서 공부할 시간에 영어책 한 권 읽기를 추천한다. 어려운 영어 책이 아니라도 좋으니 헤밍웨이의 책과 같은 클래식을 읽기를 권한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작년 12월 중순, 홍준표 대표의 사퇴로 한나라당의 지도부가 붕괴하면서 박근혜(당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정상적인 당 체제기능 안에서 총선 후 불안한 체제를 다시 정상적으로 갖출 때까지 기능하는 위원회다. 비상대책위원으로는 이상돈 교수를 포함해 김종인 교수(한국외대), 조동성 교수(서울대), 이양희 교수(성균관대), 조현정 CEO(비트컴퓨터), 이준석 대표(클라세 스튜디오), 황우여 원내대표(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의장(한나라당), 주광덕 위원(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세연 원내부대표(한나라당)가 있다. 이상돈 교수의 경우 평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한나라당 비대위 영입 시 파격 인사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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