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
  • 송은지 기자
  • 승인 2012.01.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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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다."

       


박효진 학생 : 종교의 정의는 무엇인가. 종교가 가져야하는 기본적인 구성요소가 있나.


오강남 교수 : 실재의 더 깊은 차원을 깨달음으로 얻게 되는 변화의 체험이다. 변화의 체험에서 얻게 되는 자유,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힘쓰는 것이 종교다.
여기에 무슨 요소가 있나. 바로 체험이다. 체험에는 변화라는 것이 있다. 변화는 ‘Change’가 아니라 ‘Transformation’이다. 환골탈태의 변화라는 것이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 이것이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체험이란 실재의 깊은 차원을 보는 것. 그것은 깨달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하느님을 보통 남자로 본다. 이런 종류의 생각들을 버리고 또 버리고, 완전히 버려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버려라. 그러면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이후 새로운 사람이 되고 변화가 오고 자유가 온다. 이런 자유를 버릴 수 없다면 확신이 되고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하느님은 이렇고, 예수는 저렇다’라고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체험이 가능하다고 믿는 확신.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김하영 학생 : 그렇다면 종교학의 정의는 무엇인가.


오강남 : 종교학은 인간사회에 있는 종교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종교 현상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종교학이다.


: 학문은 이성의 영역인데 종교는 비이성의 영역 아닌가.


오강남 : 종교는 비이성적이라기보다 초이성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초이성적인 것을 이성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종교를 과학적, 학문적으로 조명해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학과 신앙은 별개다. 종교학자가 꼭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자기 개인적인 신앙을 가질 수는 있지만.


: 선생님께서는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올바른 해석이 존재하는가.


오강남 : 해석하는 방향은, 기독교적 용어를 쓴다면, 하느님과 더 가까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느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안된다. 이것을 ‘윤리적 해석학’이라 한다.

 

종교, 과학과 양립 가능해
과학만능주의 반대할 뿐

: 선생님 책을 읽었다. 선생님께서는 모든 종교를 삶의 의미로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다. 그렇게 종교를 바라보게 되면 종교 간의 비교는 불가능하지 않나.

오강남 : 종교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등이 있다. 여기서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 의미 없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비교, 의미 없다. 그 중에 어떤 종교가 더 좋으냐 나쁘냐도 의미가 없다. 모든 종교 안에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종교를 수직으로 나눠서 각 종교를 비교하는 것보다 수평적으로 나눠야 한다. 편의상 두 가지 층으로 나누면 하나는 표층종교고 하나는 심층종교다. 표층은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를 더 잘 되게 해보려고 하는 믿음이다. 심층은 나를 극복하고 진짜 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 모두 표층이 있고 심층이 있다. 기독교의 표층을 보면서 불교의 심층과 비교하면 안된다.


: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은 보이는 것 위주로 믿는 과학주의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종교가 양립할 수 있나.


오강남 : 과학에 대한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과학에는 과학주의라는 과학만능주의와 진정한 의미의 과학인 과학적 접근법이 있다. 과학만능주의는 과학이 아니면 비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과학적 접근법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진리지만 증명되지 않는다고 다 틀렸다 말하지 않는다. 과학적 접근법으로서의 과학이라면 종교에 반대할 필요가 없다. 아인슈타인이 종교에 반대했나. 아니다. 문자주의적 종교에 반대한 것이다. 종교가 과학을 반대했나. 아니다. 문자주의적 과학, 즉 과학만능주의에 반대한 것이다.


: 선생님의 종교관을 듣고 있으면 철학과 다를 것이 없다. 철학과 종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강남 : 근본적으로는 없다. 철학이나 종교나 인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데는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요즘 철학적 신학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상당 수 종교가 종교 본연의 자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성경을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만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말씀이 적혀있는 진리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오강남
: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표층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하느님이 한 명 불러서 하늘에서 다 적게 하시고 가죽으로 재본하고 금칠해 떨어뜨린 것이 아니다.
: 종교가 있는 친구들은 종교적 생활패턴들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떤 가치관들이 충돌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한다.
오강남 : 종교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일요일 성수를 지키라고 하는 것 등은 종교적 용어로 하면 방편이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엄마가 우유 한 잔, 계란 하나를 먹으라 한다. 자라기 위해 필요한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는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엄마가 주는 대로 먹어야만 한다. 그런데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 뜻을 알게 된다. 그 때는 꼭 우유와 계란을 먹지 않아도 된다. 우유, 계란과 비슷한 탄수화물, 단백질을 가진 음식을 섭취하면 되는 것이다. 즉, 뜻을 알면 우유, 계란에 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이냐. 엄마가 왜 이것을 줬느냐 더 깊은 뜻을 아는 것이 진리다.


: 어릴 때 종교를 접하게 됐을 때 부모가 아닌 무엇에 근거해서 종교적인 가치관을 형성해야 하나.
 

오강남 : 인도에서 태어나면 대부분 힌두교고 이란에서 태어나면 거의 다 이슬람이다. 그건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그렇게 태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그 종교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한 것도 아닌데 한국 사람임을 부정해야 하나.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만 이 세상에서 올바른 인간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종교인은 고속도로 안 타나
종교인도 세금내라

: 우리나라 종교인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오강남 : 말할 여지도 없이 내야 한다. 교회가 받은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 한다. 교회 목사님도 수입이 있으면 거기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 목사님들은 고속도로 안 타나. 목사님들은 전기 안 쓰나. 일반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혜택을 받으면서 돈을 안낸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느 의미에서는 자진해서 더 많이 내어야 할지도 모른다.

: 목사님들이 세금을 안내는 이유가 경제활동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으로 알고 있다.


오강남 : 목사들이 받는 월급의 명목이 사례금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종업원이 식당에서 받는 팁도 다 세금으로 낸다. 팁도 일종의 사례금이다.


: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9?1테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종교가 없는 것이 인류에 좋은 것 아닌가.


오강남 : 종교들이 표층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표층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하느님의 힘을 빌려서 내가 지금 잘 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종교는 상당 부분 경제적 가치를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다. 부자 아니면 믿음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는 것도 억울한데 죄까지 생긴다. 이중고다. 이런 식으로 표층종교에 머물고 있으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자기나 자기 집단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서로 부딪히니까 십자군전쟁도 나고 마녀사냥도 생긴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본연은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종교가 필요하다. 모든 종교의 기본이다. 이런 종교는 필요하다. 그러나 마녀사냥하고 십자군 등 나만, 우리만 하는 식의 표층종교는 차라리 없어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교회끼리의 전도를 보면 옆의 교회에 나가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 교회에 오라 한다. 신도들을 늘리기 위해 싸운다. 이런 병폐들을 보면 무교회주의적인 사람들이 옳은 것 같다.
 

오강남 :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무교회주의’라 해서 완전히 교회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끼리도 모여야 하니까. 신앙이라는 것은 혼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신앙을 나누고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신앙공동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논어의 첫머리가 무엇인가.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워서 때대로 익히면 얼마나 기쁜가? 여기서 학(學)이라는 것은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다. 서울 인구가 얼마냐 이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던 것을 계속 깨우치는 것이다. 이것이 기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다. 그래서 멀리서 찾아올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지없이 즐겁다는 것이다.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이다. 자기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남에게 전달하고 남의 동의를 얻는 것이다. 이렇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할 것이 없다. 바로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이다.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막역지우(莫逆之友)다.
 

: 현재의 교회를 보면 성경과 다른 것들이 생겨나 있다. 여자 목사나 여자를 위해 생겨난 권사라는 직분 등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오강남 : 성경과 다른 것들이라 했는데 성경의 문자와 다른 것들이라고 봐야 한다.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한다면 컴퓨터 왜 쓰나. 핸드폰 왜 쓰나. 성경에 컴퓨터와 핸드폰 쓰라고 나와 있지 않았다. 교회에 권사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권사를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핸드폰이나 컴퓨터도 쓰지 말아야지 왜 권사라는 직분에만 매달리나.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문자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에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정신은 사람에게 생명을 준다고 했다. 문자에 달리면 망한다. 죽는 것이다. 그러나 의미를 찾으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 구약에는 여성차별도 존재하고 노예도 인정한다고 들었다.
 

오강남 : 그때 당시의 정신은 그랬다. 오늘날은 다르다. 그때는 여자들을 차별하는 사회적 정황이 있었던 거다. 옛날에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그럴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보자. 성경에는 불구자는 교회에 들이지 말라 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러나. 그것은 지키지 않으면서 여자 목사는 왜 지키는 것인가. 성경에 보면 혼방으로 된 옷은 입지 말라 했다. 동성애도 그렇다.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은 레위기에 나오는데 한 밭에 여러 곡식을 심지 말라는 것과 혼방으로 옷을 입지 말라는 것과 같이 동성애를 말했다. 그러나 현재 그런 것들은 넘어가면서 왜 동성애만 문제 삼는가. 그것은 자신들의 특수한 목적 때문에 성경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성경대로가 아니다. 성경대로라면 동성애자는 돌로 쳐죽이라 했다. 그러나 돌로 쳐죽이나? 좀 극단적인 말이지만 성경대로 한다면 돌로 쳐죽여야지 왜 안된다고만 말하나.

 

종교·정치 떨어질 수 없지만
권력지향적 정치는 안돼

     
 

 

 

: 술과 관련된 내용도 성경과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다르다.

오강남 :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보니 한국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교회의 이름으로 술 마시지 말라 했다. 그러나 성경 자체로서는 술은 마셔도 되고 안마셔도 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술 좋다고 말하는 부분이 반이고 술 안좋다고 말하는 부분이 반이다.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들기도 하셨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 허약의 비위를 위해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를 마시도록 하라’고도 말했다. 술에는 나쁜 부분도 있고 좋은 부분도 있다. 단지 그것이다. 커피잔이 좋다고 하지 않나. 그러나 남에게 던지면 나쁜 것이다. 똑같은 것 속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 술도 마찬가지다.

: 종교를 가진 사람이 반종교적인 전공을 공부하고 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나.


오강남 : 문자주의적인 기독교인이 생물학과에서 진화론을 배운다고 가정하자. 진화론과 기독교가 배치된다고 누가 얘기하는가. 근본주의 기독교에서 그렇게 얘기한다. 근본주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진화론이 문제 될 것이 없다. 진화론을 창조과학으로 반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근본주의 기독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과학이란 끝이 열려있는 것이다. 과학적 접근법은 그러한데 창조과학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내놓고 그 결론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참된 의미의 과학이 아니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주의 신앙을 과학적 용어를 써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결코 진화론이 반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반문자적 기독교다.


: 종교인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만약 옳다면 그 정도는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가.
 

오강남 : 종교와 정치는 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세속적인 의미의 정치는 권력지향적이다. 그러나 종교가 정치에 관여한다는 것은 권력지향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인류의 안녕, 복지를 위해 정치에 참여해야지 권력을 가지려 하면 안된다.


: 정교분리는 어떤 경우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


오강남 : 종교가 권력지향적인 정치에 합세해 같이 권력을 지향하게 되면 그것은 분리되어야 한다. 자기 집단의 권력과 이해관계를 위해 애쓰지 말아야 한다. 더 큰 가치, 오늘날 같으면 경제제일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종교가 설교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 직접 나와 정치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오로지 종교집단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권력을 잡으려 하면 곤란하다. 종교가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정치에 참여하면 좋은데 당장 분노가 차올라 권력을 잡겠다고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이것은 종교를 떠나 정치로 넘어간 것이다.
『장자』라는 책에 보면 안회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위나라에서 독재자가 나와 사람들을 괴롭히니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가도 되는지 물어본다. 그러나 공자가 허락을 하지 않는다. ‘왜 안됩니까’, ‘너는 굶어야 한다’, ‘집이 가난해서 굶었습니다’, ‘그런 굶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굶겨라. 마음을 굶기고 가면 다 살겠지만 마음을 굶기지 않고 가면 사람들도 죽고 너도 죽는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다른 사람 중심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준비가 된 사람이 정치에 들어가야 한다. 이게 종교가 정치에 관여할 때 가져야 할 기본적 자세라 할 수 있다.
 

인터뷰 정리 송은지 기자 ilnrv@cauon.net

 

 

오강남 교수(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
오강남 교수는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해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좬화엄(華嚴)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좭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미의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에서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캐나와 북미, 그리고 한국을 넘나들며 강연과 집필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예수는 없다』(2001)를 통해 근본주의에 찌든 한국의 종교를 비판한다. 문자주의에 머물러 있는 종교를 날카롭게 분석한 『예수는 없다』는 오늘날 한국 종교에 커다란 의미를 던졌다. 또한 그는 『종교, 심층을 보다』(2011)를 통해 자기중심적이고 표층적인 신앙에서 발전해 종교의 심층에 들어가 참 뜻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박효진 학생(철학과 4)
박효진 학생은 철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전공을 통해 종교학을 배운 그는 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교회에 다니며 신학을 좀 더 심층적으로 알고자 했으나 단순히 지식적인 교리만 배우는 교회에 실망해 혼자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신학에서 나아가 종교학까지 관심이 넓어졌다. 종교는 맹신적 신앙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과 차이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종교학을 파고들면 들수록 ‘인간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관점에서 철학과의 차이점을 찾지 못했다. 혼자 공부하기에 버거움을 느낀 그는 종교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 ‘청춘’을 찾았다.

김하영 학생(국제관계학과 2)
김하영 학생은 누군가 종교가 있냐고 물으면 ‘천주교’라 말한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천주교를 가진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딸일 뿐이다. 부모님이 천주교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아무 의식이 없을 때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자신이 원치 않지만 매주 성당에 출석해야 했다. 강제적으로 종교를 가지게 된 그녀는 점점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종교가 없었다면 9?1 사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없어도 될 일이었다. 도대체 종교가 가진 의미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종교에 얽매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종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청춘’을 찾았다.
송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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