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형 다문화사회
  • 중대신문
  • 승인 2011.11.2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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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한국 어디로 가고있나 ④ 다문화 사회의 지향점

글 싣는 순서 ① 우리의 현실 속 다문화    ② 다문화 사회의 다문화주의 논의  ③ 정책 차원의 다문화 주의 ④ 다문화 사회의 지향점

 

 

 

 

 

 

 

 

 

 

 

상반된 이념과 정책이 공존하는
한국의 다문화
해답은 이념과 정책이
체계적 일관성을 갖추는 것이다
  한국의 다문화 담론을 한 마디로 특징지을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운 작업임이 틀림없다. 다원주의적인 듯하다가도 동화주의적이고, 적응을 강요하는 듯하면서도 공생이 제창되고, 상호교류의 태도가 강조되는 듯하면서도 온정적 시혜의 태도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한국의 다문화 담론은 매우 이질적인 방식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합리적인 인식의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데, 한 가지 팁이 있다면 다문화 담론을 이해하는 방식을 (작위적이긴 하지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의미화되는 이념적 측면, 행정가들을 중심으로 입안·수행되는 정책적 측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규범적 측면 등과 같이 분석적인 차원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접근해보는 것이다. 즉, 한국 사회는 이념적인 지향점들 중에서, 정책적인 지향점들 중에서, 그리고 규범적인 지향점들 중에서 각각 어떠한 경로를 걸어 왔으며 또한 각각의 경로들을 어떻게 하나의 그림으로 조합해내고 있는 것일까.

현실: 다원주의, 적응정책, 온정규범의 모순적 공존
  이념적 측면에서 다문화주의의 선택지는 크게 동화주의, 다원주의, 상호주의 등으로 세분되곤 한다. 여기서 한국형 다문화사회는 어떤 이념의 경로로 합의되고 있을까. 실질적인 정책과는 무관하게, 적어도 이념적 측면에서 다문화주의는 ‘다원주의’ 쪽으로 무게 중심이 실린 형국이다. 이념적 헤게모니가 다원주의에 있다는 이야기인데, 한국사회의 연구자들 대다수가 아직은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하여 다문화주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정책적 측면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현재 다문화주의를 선도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나 활동가들이 입을 모아 비판하고 있듯이,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주로 소수 종족들의 주류 문화 ‘적응’ 쪽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흥미롭게도 본 연재 기획의 앞선 필자는 다문화정책이라는 말보다 ‘이민정책’이라는 말을 선호하고 있다). 여기서 이념 측면에서의 다원주의와 정책 측면에서의 적응 패러다임이 모순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상위법이 속지주의보다는 속인주의 패러다임을 채택하고 있다는 현실 을 고려한다면, 다문화의 이념적 강조점과는 다르게 정책 측면에서는 왜 소수 종족의 배제적 관리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 국적의 시민들에게는 어떠한 규범적 행실(normative conduct)이 통용되고 있는 것일까. 이는 말 그대로 다문화사회와 관련하여 어떠한 수행 지침이 정상적인 것(the normal)으로 합의되어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한국의 주류 시민들에게는 주로 ‘온정’적 행실이 규범적 우세종(dominant)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거의 필연적인 결과라 볼 수 있다. 다문화의 행실 규범을 상호 간에 평등한 교류와 한쪽의 일방적 지배를 양극으로 하는 스펙트럼으로 이해했을 때, 현실적으로 채택 가능한 규범은 이념과 정책 사이의 모순을 노출하기 쉬운 양자택일적 해답보다는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것으로 귀결되기 쉽다.
  그런 까닭에 온정적(이고 또한 시혜적인) 행실이란, 다원주의적 이념 그리고 그와는 모순되는 적응 위주의 이민정책이 결합하여 파생시킨 산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이념과 정책 사이의 간극을 효과적으로 봉합하는 효과를 수반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조금 더 확장하여 말한다면, 당위론적인 이념 체계와 현실론적인 행정 체계 사이의 간극이 (소수 종족에 대한 온정적 시혜를 주로 하는) 시민사회의 행실 체계를 통해 해소되는 구도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망: 자원 조정, 시민권 공유, 이데올로기 최소화가 과제
  다원주의적 다문화 ‘이념’, 적응 위주의 다문화 ‘정책’, 온정적 행실의 다문화 ‘규범’의 모순적 조합을 현존하는 한국형 다문화사회의 특성이라 규명했을 때, 앞으로 다문화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도 검토해볼 만한 사항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질문 한 두 가지 정도를 추려볼 필요가 있겠다. 하나는 이념과 정책의 모순 그리고 규범을 통한 봉합이라는 현실이 얼마나 유지될 것인지를 전망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이와 관련하여 새롭게 대두될 수 있는 쟁점들을 부가하여 향후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것이다.
  먼저, 현재의 다문화사회 원리들이 매우 불안정한 토대 위에 공존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다문화주의라는 이념적 보편성과 정치·행정체계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보편성이 불일치함으로 인해, 이념과 정책 사이의 균형점이 상실될 취약성이 다분하다. 단적으로, 전지구적 경제 위기와 관련하여 재정적 조정을 달성할 수 있을지, 각 부처별 지향점들이 서로 다른 가운데 행정적 합리화를 성취할 수 있을지, 그리고 실제적 요구와 상징적 규범의 형식적 비일관성 속에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등에 관한 전망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이러저러한 대내외적 변인들이 상존하는 한 유동적 타협점에 위치해 있는 한국형 다문화사회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재편될 가능성을 잠재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 가능성의 목록에 ‘다문화라는 상징의 저수지가 고갈되어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나타날 위험’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관적 전망은 또 하나의 변인으로서 ‘치안’의 문제를 고려했을 때 더욱 강화된다. 물론 소수종족=범죄라는 등식이 사회적으로 추인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직 다행이긴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암약하고 있는 다문화 안티 카페라든가 안산 원곡동의 다문화 파출소 같은 양상들은 조만간 다문화와 치안이라는 문제가 손쉽게 접합(articulation)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징후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규범의 측면에서 온정의 행실이 정상성(normality)을 상실하고 배제와 폭력의 행실이 새로운 규범적 우세종으로 대체될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전망들은 구조적인 조건만을 고려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지향을 가져야 할지에 관한 논점은 별도의 문제이다. 다만, 이런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는 해법들은 (앞선 연재물들을 보더라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제시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나의 언어대로라면, 그것은 이념적 지향으로서의 상호주의, 정책적 지향으로서의 공생, 규범적 지향으로서의 상호교류 같은 것들이 체계적 일관성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길이라 요약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화된 언어들이 현실화된다는 보장 역시 그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중적 착취와 수탈을 제거하고 경제적 자원을 조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배제적 포섭 혹은 포섭적 배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정치적 시민권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 성별화된 민족주의 등의 산적한 과제를 청산하고 이데올로기적 모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다문화사회로의 길은 결코 가깝지 않다.

김성윤(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글 싣는 순서

① 우리의 현실 속 다문화   
② 다문화 사회의 다문화주의 논의 
③ 정책 차원의 다문화 주의
④ 다문화 사회의 지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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