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게르마니아에서 인문학을 처음 만났다. 유토피아라는, 요즘 같은 세상에 다소 낯설고 ‘비효율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의 눈이 놀랍도록 반짝여 의아했다. 무엇이 저토록 인문학을 갈망하게 만드는가. 하지만 이상화 교수님이 묘사하는 윌리엄모리스의 유토피아를 떠올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인문학의 즐거움에 젖어들고 있었다.
  윌리엄모리스의 과거 지향적 유토피아는 ‘사회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행복해지지 못했나’하는 나의 오랜 의문에 일종의 답을 제시했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사회의 지배적 관념에 갇혀있던 것이 문제였다. 인문학은 그러한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경영학부 2학년. 자발적으로 인문학에 발을 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효율성과 성과 중심의 경영학을 열심히 배운다면 빠른 것을 추구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이기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인문학을 배우는 일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며 그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한 자 더 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인문학이 몇몇 똑똑한 이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문학을 만나보니 나의 생각은 사실과 달랐다. 학술부 기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쨌을 것인가. 학술부 기자가 된 것은 큰 행운이다.
  게르마니아를 다녀온 날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엉뚱한’ 방법들을 상상했다. 기존의 가치관이 강요하지 않았던 최대한 엉뚱한 방법들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경영학에서 배웠던 방법론들이 인문학적 상상력과 결합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유토피아를 실현시키게 되지 않을까?
  최근 중앙대의 행보를 보면 격변하는 사회의 요구를 좇아 빠르고 영리하게 움직인다. 응용학문에 대한 화끈한 투자 덕에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많이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인간상’. 그러나 빠르기만한 인재상은 2%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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