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대학 생활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해방광장 바닥을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기형도의 시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라는 구절이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88만원 세대 담론이 지속되고 있는 오늘날,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운 청춘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모르겠다’는 말을 거둬내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4년간 쉼 없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던 듯하다. 학교의 가을은 늘 선명했으며, 강의실 안팎에서 나는 여러 명의 스승을 만났다. 그들은 나를 다시 꿈꾸게 했다. 진정 고마운 일이다. 인간은 꿈을 꿈으로써 자신에게 더욱 가까워질 수 있고 종래에는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존재 아닌가.

  졸업을 앞두고 요즘 날씨 만큼이나 변덕스러운 감회에 젖어 있던 나에게 며칠 전 치러진  수능시험은 ‘처음’을 상기시켰다. 다소 상기된 표정과 침묵하는 표정이 공존하는 수능시험장의 풍경에서, 또 지난 주말을 기해 우리학교를 방문한 수시전형 지원자들의 풋풋한 얼굴에서 우리들의 과거와 학교의 미래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평소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는지 울면서 건물을 나오는 여고생, 전형 뒤의 홀가분함과 교정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떠나는 학생들의 얼굴, 얼굴들. 어제 선배들이 떠나간 자리는 오늘의 내가 서 있는 자리이고, 후배들이 내일 앉을 자리가 될 것이다. 11월의 쌀쌀한 주말에 학교에서 오랫동안 바라본 얼굴들은 머지않아 우리 학교에 가치를 더하고 있을 게다. 시작과 끝은 이러한 방식으로 맞닿아 있다.

   졸업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다시 우리대학을 생각한다. 수능이 끝나고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에 들뜨기도 했지만 동시에 세상에 ‘내던져진’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모든 것이 자유롭지만 그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처음으로 알게 된 대학 사회의 룰이었다. 고교 시절과 너무도 다른 대학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던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개인별 지도 교수제’는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장학제도 또한 재학 4년 내내 큰 힘이 되었다. 성장하는 학교를 지켜보는 기쁨도 작지 않은 것이었다. 성장기에는 언제나 성장통이 따르는 법이지만 우리 학교가 크고 작은 아픔을 잘 치유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 학교가 학내 구성원 각각의 개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총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질적으로 건강하고 탄탄한 대학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는 미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理想 以上의 대학으로 바로 설 수 있기를, 학교를 떠나며 진심으로 소망한다.

황선희 상경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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