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우리의 현실 속 다문화  ② 다문화 사회의 다문화주의 논의   ③ 정책 차원의 다문화 주의 ④ 다문화 사회의 지향점

 

 

 

 

 

 

 

 

“문화는 문화간 상호 작용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다문화주의 통합 모델이 최선이라 할 수는 없다”

  ‘다문화’ 담론의 기원은 직접적으로는 1971년 캐나다의 트뤼도 정부가 도입한 다문화주의 정책에서 비롯되었지만 20세기 전반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이민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초창기 이민 논의의 배경에는 근대적인 의미의 이민현상이 있었다. 국제이주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현상이지만 근대 이후 이민은 보다 구조적인 성격을 띠었고 그 주된 배경은 자본주의화 과정이었다. 신대륙 발견이 촉발시킨 상업자본주의가 유럽인들의 세계진출과 아프리카인들의 강제이주를 낳았다면 산업혁명은 유럽인들과 아시아인들이 유럽의 공업지대나 남북미로 대거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근대적인 이민현상에 대한 연구는 이민을 통해 형성된 사회인 미국에서 발달하였으며, 특히 20세기 전반부 시카고학파의 사회학적 연구가 그 효시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토마스와 즈나니에츠키의 미국 거주 폴란드 이민자 연구가 시발점이 되었는데 이 연구는 생물학적 요인에 입각한 기존의 국제이주민에 대한 설명과 달리 이들이 새로운 사회적 맥락에 적응하는 과정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이밖에도 시카고학파는 인종적인 관계나 게토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였고 통계분석이나 생애사 연구와 같은 방법론적인 혁신을 이루었다. 이주민들의 공간적 집중, 출신국가별 공동체 형성, 동화 등 시카고 학파가 제기한 문제들은 이후 미국 및 유럽 이민사회학의 핵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이민 연구가 정책과의 연관성이 큰 분야이지만 다문화 논의는 그 기원이 정책에 있는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치성이 강한, 문자 그대로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문화’라는 이름의 한국 이민 담론이 ‘관 주도의 다문화주의’로 규정되고 국가주의나 동화주의의 혐의를 받는 것도 한국사회의 후진성과 더불어 이러한 이민연구가 지닌 속성과 연관성이 있는 것이다.
  다문화 담론은 다양한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비유럽 이민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종족적, 문화적으로 다원화된 현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처방안의 하나로 종족집단의 문화와 자율성에 초점을 둔 일련의 정책,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정책을 지지해주는 이론으로서의 다문화주의 등 상이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다문화주의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국의 아리랑 축제와 같은 다문화 축제, 각 종족의 전통문화 지원, 종족 공동체 및 종족 경제 육성을 들 수 있다.
  다문화주의 이론 및 정책은 공화주의 모델과 같이 국민국가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기존 소수자 통합모델이 다원성과 이질성이 심화되는 새로운 종족적 상황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며 그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그렇지만 이미 1990년대부터 다문화주의는 이민에 호의적인 진영과 부정적인 진영 모두로부터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전자는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는 다문화주의가 종족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배제를 완화시켜주지 못하며 오히려 이들을 사회에서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후자는 정반대로 비백인의 유입을 촉진시키고 이들에 호의적인 다문화주의 정책으로 인해 백인의 기득권이 침해되고 백인사회의 정체성이 위기에 빠졌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상호문화주의가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 중 하나라면 노르웨이 사태와 같은 인종주의 범죄는 다문화주의를 빌미로 한 반이민 공세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상호문화주의는 다문화주의가 종족마다 뚜렷이 구분되고 변하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 후 이 서로 다른 문화들 간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문화에 대한 동태적인 인식을 제시하였다. 영미권에서 발달한 다문화주의와 달리 프랑스 벨기에, 캐나다의 퀘벡주 등 불어권 사회에서 발달한 이 입장은 상호작용이 문화나 정체성의 핵심요소이며 문화는 상호작용의 결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상호문화주의가 관심을 두는 문화는 종교 교리, 전통적인 의식주 문화, 국민성, 전통음악과 같은 것보다는 이주민들과 토박이들이 학교, 직장, 동네에서 상호작용하면서 겪게 되는 보다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경험이다. 공화주의와 다문화주의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상호문화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시민으로서 필요한 공통의 문화도 중시한다.
  10여 년 전부터 서유럽과 북미에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공격은 반이민주의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반이민주의와 인종주의가 특정 정치세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구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지만 극우주의가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극우주의는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 경제적·문화적 세계화에 대한 반발, 애국주의, 이민에 대한 거부감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난 7월 노르웨이 테러는 유럽 극우주의의 성격과 실태를 잘 보여주었다. 주범 브레이비크에게 자신의 행동은 다문화주의와 ‘문화적 맑스주의’의 성격을 지닌 노동당 정권과 좌파에 대한 투쟁이자 점증하는 이슬람의 위협에 대한 저항운동이었다. 그는 정권의 다문화정책으로 비백인 이민자 수가 늘어났고 그에 따라 노르웨이인들의 전통적인 삶이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극우주의자들의 다문화주의 비판은 다문화주의를 관용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그러나 다문화주의 통합모델이 다른 모델보다 종족적 소수자들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나아지게 만든다거나 종족간 공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다문화주의는 특수한 사회적 맥락의 산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조심스러워야 한다. 즉 다문화주의는 오래전부터 소수민족 형태로 존재해왔던지 또는 최근 이민의 결과로 형성되었든지 이주민들이 종족별로 구분되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에 적용해볼 수 있는 접근방식인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경우에도 다른 접근방식도 가능할 수 있다. 이주민 통합방식은 한 순간에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종족적 상황, 계급구조, 경제상황, 사회운동, 정치체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해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사회에서 ‘다문화’나 ‘다문화주의’라는 표현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용어는 본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 용어들은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와 관용적인 대응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이 용어의 내포를 어떤 문제의식과 논의주제들로 채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엄한진 교수(한림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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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우리의 현실 속 다문화 
② 다문화 사회의 다문화주의 논의  
③ 정책 차원의 다문화 주의
④ 다문화 사회의 지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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