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청맥서점 앞을 급히 지나가다 느낌이 이상해서 되돌아가보니 한때 중앙인들로 북적이던 1986년에 문을 연 청맥서점이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휑하니 비어있고 빈 서가들만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2011년 10월 31일부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맥서점”이라고 게시된 쪽지를 보고 내 가슴이 갑자기 휑해지고 어떤 현기증마져 느꼈다. 마침 이번 주 <중대신문>에도 「마지막 서점, 역사의 뒤안길…」과 「책과 사람, 청맥입니다」 기사가 실렸다. 나도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자주 들렀던 곳이다. 나에게 책방은 언제나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곳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책의 저자들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1970년대 초 대학원생 시절에 청계천5가 일대의 중고책방들을 뒤지고 다닐 때부터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할 때도 주말마다 헌책방을 뒤지면서 살았다. 가장 인상에 남아 내 삶의 중심이 된 책은 1984년 가을 영국 리즈대학교 근처에서 구입한 18세기 영국의 대문인 사무엘 존슨 박사(1709-1784)가 편찬한 1805년 축약판 영어사전이다. 200년이 훨씬 지난 이 책을 나는 지금도 내 서재 한가운데 모셔놓고 매일 쳐다보며 그 사전을 만든 존슨박사의 고뇌의 나날들과 치열한 노고를 생각하며 내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고 있다.
독서의 계절 한 가운데에 한때 중앙인들에게 지성의 맥을 잡아주던 청맥서점이 퇴출되었다니 애석하다. 책과 씨름하며 허비한 인생의 가을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 자기연민에 빠지면 안된다고 다짐하면서 옷깃을 스치는 찬바람을 운명애(amor fati)와 비극적 환희로 승화시킨다. 청맥이여, 그대는 우리의 가슴 안에 항상 뜨겁고 푸르게 남아 있으리라. 아듀!

정정호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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