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가 성장을 저해한다? 참으로 낡고 부적절한 논거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과 관심에 비추어 볼 때, 이제는 진정 복지가 시대의 당위이며 요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직도 이처럼 오래되고 불필요한 명제와 담론에 대한 반박 글을 써야 한다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복지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가장 요긴하게 활용하는 무기이다. 이들은 복지가 확대되면 기업의 조세 부담이 커지게 되고, 노동 임금이 상승하게 되며,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로인해 기업의 이윤이 줄어들게 되면, 신제품 개발이나 투자에 인색해지고, 새로운 노동자에 대한 고용에 더욱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따라서 복지지출의 확대를 지양하고 기업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기업까지 유치하여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선성장 후분배’를 외치던 발전국가 정부에서 귀가 따갑게 들어 왔던 구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도대체 그 ‘후’는 언제인가?) 그런데 아직까지도 ‘세계화’ 혹은 ‘작은 정부’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일부 정치인과 경제학자, 그리고 보수 언론에 의해 다시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러한 논리가 복지국가의 ‘위기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19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특정 국가에서 특정 시기에 고안해 낸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복지가 성장을 저해하는가? 최근 이 명제를 두둔하기 위한 대표적인 예로 남부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를 이야기 한다. 이른바 피그스 PIGS (포르투갈, 아이랜드, 그리스, 스페인)에서 지나친 복지지출의 확대로 인해 국가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국가 부도와 같은 재정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예이다. 남부유럽 국가들은 복지의 상대적 발전 수준이 척박한 영미 국가들과 유사하거나 혹은 더 낮은 수준의 복지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국가들에서 복지의 확대가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정말 복지지출의 확대가 재정 위기를 초래했다면, 북유럽 국가들로부터 시작하여 대륙유럽, 영미권, 남부유럽 국가 순으로 경제적 위기를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표>와 같이 북유럽 국가들은 비교적 건실한 경제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은 혹시 신자유주의 경제 기조에 기초하여 무분별한 금융상품의 판매와 탐욕스러운 이윤 추구에 몰두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복지선진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복지후진국에서는 엉뚱한 논리를 들어 시장의 문제를 복지 탓으로 돌리며 복지예산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


복지와 성장의 부적관계는 이외에도 다수의 이론적, 경험적 근거들에 의해 비판받고 있지만, 사실 명제의 옳고 그름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현 시점에서 보다 올바른 자세는, 불필요한 논쟁은 접어 두고, 두 개념 간 이분법적인 사고를 뛰어 넘어 복지와 성장 간 ‘선순환 구조’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 소위 사회투자론, 사회투자전략, 혹은 사회투자국가이다. 사회투자전략은 소득보장 중심의 소극적인(passive) 복지를 넘어 노동을 강조하는 적극적인(active) 수단으로서의 복지를 의미하며, 복지를 단순히 성장을 저해하는 ‘비용’적 측면에서 이해하기보다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투자’적인 성격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대안이다. 대략적인 운용방식은 다음과 같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생산 가능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 지출의 확대를 통해 공공부문 혹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다수의 좋은 혹은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동시에 좋은 일자리에 양질의 노동자가 찾아갈 수 있도록 인적자본을 확충하고 고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 전략을 활용한다. 이러한 과정은 직업훈련, 직업알선, 임금보조 등과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ALMP: active labor market policy)과 아동과 노인에 대한 보호, 그리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돌봄서비스(care services)의 확대를 통해 가능하다. 사회투자전략의 구사를 통해 복지증진과 사회통합이라는 사회정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동시에 일자리 창출과 투자적 활동이라는 경제정책의 목표에도 부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발달사에 관한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지만, 성장제일주의 모델은 이미 DJ정부 들어 해체되었고,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도전은 참여정부 시절 일부 시도되었다. 그러나 사상 최대의 복지예산이라는 수사와 함께 아직도 기업 감세와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언급하는 현 정부의 태도를 보면 할 말이 없다.


더 이상 이 낡고 부적절한 논거에 기초하여 성장에만 집착하지 말자. 아직도 우리 사회의 수많은 노동자들과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에게는 한쪽도 주어지지 않을 허구의 ‘파이’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경제성장이 -원래의 기대처럼- 우리에게 가져다 줄 분배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진중하게 구하면서, 지속가능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 복지와 성장의 ‘상생’을 위해 노력할 때이다. 중요한 것은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성장을 통해 함께 잘 사는 통합된 사회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김교성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 학사
Norfolk State University 사회복지학 석사
University of Pennsylvania 박사

현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공 분야 : 복지국가, 비교사회정책, 소득보장

'왜 지금 복지인가' 연재를 마칩니다. 다음 호(1751호)에서는 새로운 연재기획 '21세기, 다문화사회 한국(4부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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