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업자본의 풍요와 학문적 성찰에 대한 공허함을 비판하며 푸리에가 제시한 해결책 '정념'에 대해 변기찬 교수가 설명하고 있다.

 

 

 

 

 

 

 

 

 

억압으로 인한 불만족은 사회 부조화 야기
정념 발현의 극치에서 진정한 사랑도 실천돼

  지난 28일 서라벌홀(203관) 814호에서 143회 게르마니아가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초청된 변기찬 교수(부산외대)는 ‘인간해방의 사회주의 인공낙원’이라는 주제로 샤를푸리에의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에 그려진 유토피아를 전했다.
  푸리에는 그가 살던 19세기의 대세를 이룬 상업 문명의 폐단을 목격하고 이를 정면 비판했다. 대중은 상업의 발전과 그를 통한 기술의 유입이 안락함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여겼지만 푸리에는 그 속에서 공허함을 발견한 것이다. 상인들은 유통과정에서 막대한 이윤을 챙겨 원가의 100배가 넘는 가격에 물건을 공급했고 고의로 공급을 축소시켜 상품의 가격을 폭등시키기도 했다. 상업이 가져다 준 부는 고스란히 상인의 몫으로 쌓였으며 빈민들은 물가의 폭등에 고통 받았다. 푸리에는 비생산적인 상업이 무너지고 생산적인 산업 분야가 육성된다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어 빈민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푸리에는 또한 기존의 학문들이 현실의 문명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단적으로 데카르트에 대해서는 “문명에 나타나는 기만과 허위성을 인정한 채 회의를 하는 것은 진정으로 필요한 문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비꼬았다. 그는 대안으로서 ‘절대적 회의’와 ‘절대적 편차’를 내놓았다. 현실만을 탐구 대상으로 삼아야한다는 주장은 그가 제시한 모델 중 절대적 회의와 관련됐으며 탐구결과를 실질적 개선으로 발전시키려던 노력은 절대적 편차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대안 모델은 현실 개혁을 추구하는 능동적 학문의 태동을 불러왔다.
  이처럼 능동적 학문을 강조한 푸리에가 당대 사회의 치료약으로 제시한 것은 ‘정념(passion)’이었다. 정념은 육체적 욕망이 정신에 억압되지 않고 마음껏 표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념이 표출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참된 욕망은 가려졌다. 억압된 본성을 기초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는 ‘표면’과 ‘표면’의 만남으로서 단절됐고 억압으로 인한 인간의 불만족은 사회로 향해 부조화를 야기했다. 푸리에가 정념을 강조한 것, 즉 인간의 본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본성과 이성의 조화를 역설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푸리에가 그린 낙원 ‘팔랑스테르’에서 모든 인간은 정념을 추구하는데 제약이 없이 행복하다. 이러한 정념 발현의 극치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도 실천될 수 있다. 일부일처제나 이성애 지상주의를 내세우던 억압된 사회에서 극도로 차별받던 동성애, 중성애적 사랑이 주목받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는 인간의 본성이 가식의 탈을 쓰지 않아도 되는 해방의 장이며 각자의 정념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다.
  변기찬 교수는 “현대 사회 인종 차별문제, 성적 차별 문제는 푸리에 유토피아의 차원에서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차별이 없이 모두가 조화롭게 사는 세계시민의 사회를 이루는 것이 현대에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강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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