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거대한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낀 조그만 나라. 그곳은 인디오와 흑인이 없는 백인들의 천국이다. 온화한 기후에 넓은 평원까지 더한 남미의 스위스, 우루과이를 만났다. 

URUGUAY

1516년 스페인의 한 탐험가가 우루과이 땅에 도착했다.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1624년 최초로 스페인인이 이주해 땅을 점령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간의 분쟁이 200여 년간 지속됐다. 아르티가스 장군이 주도하는 저항운동이 일어나 곧 스페인군에 승리를 거뒀다. 영국, 아르헨티나 등의 침략과 우루과이 원주민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1825년, 마침내 독립을 선언했다. 국기의 파랑과 하양의 9개 줄은 독립 당시의 9개 지방을 뜻한다. 이후 20세기 초부터 복지국가를 지향한 발걸음을 내딛어 현재 중남미에서 가장 선구적인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낮은 국가로 꼽힌다.

훌리에따(julieta falero)

큰 눈망울이 매력적인 훌리에따. 자신이 ‘학생비자로 한국에 온 최초의 우루과이인’이라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다. “한국에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다양한 한국을 직접 부딪혀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 캐나다와 한국 사이에서 고민하다 겁도 없이 덜컥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타버린 그녀는 모험심 많고 호기심 가득한 우루과이 여대생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낮은 국가, 고등교육 이수자가 남미에서 가장 많은 나라, 성인 문자 해독률이 100%에 달하는 곳. 바로 우루과이다. 우리에게 친숙하진 않지만 멀리서 그들만의 문화를 꽃피우고 있는 우루과이는 남미의 알토란 같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22세 소녀 훌리에따를 만나 그녀의 나라, 우루과이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학문의 빈부격차가 없는 곳
훌리에따가 다니는 ORT대학교를 포함해 우루과이에는 총 7개의 대학이 있다. 공화국대학교(Univer sidad de la Republica)만이 유일한 공립학교고 나머지 6개 대학은 모두 사립학교다. 이 대학들은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Montevideo)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의 주요 대학들이 대부분 서울에 위치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훌리에따는 “우루과이 자체가 작기 때문에 대학이 7개뿐이고 주요한 대학은 몬테비데오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우루과이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67%.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한국에는 못 미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선 가장 높은 수치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입학시험이 없기 때문이다. 의대나 약대, 법대와 같은 전문분야를 제외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 훌리에따의 고등학교 시절, 대학 진학을 선택해야 했을 때도 원하는 전공을 먼저 정한 후 대학을 선택했다. 그녀는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싶어 대학을 알아봤는데 국제관계학과가 개설된 학교는 두 곳 뿐이었다”며 “성적에 관계없이 더 좋은 커리큘럼을 가진 ORT대학교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우루과이에도 대학 서열이 있을까? 공립학교의 학비는 전액 무료인 반면 사립학교는 매달 7~80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낸다. 따라서 사립이 공립에 비해 교육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립학교 간의 서열은 없다. 훌리에따는 “신문이나 방송매체에서 라틴아메리카 대학 순위를 발표하곤 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대학 입학의 기회를 갖고 있지만 우루과이 학생들에겐 큰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취업문제다. 우루과이에서 직업을 쉽게 구하려면 반드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훌리에따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쉽지만 졸업 후 직업을 구하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졸업반 학생들은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또 “대부분의 학생들이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길 원하기 때문에 취업 시즌이 다가오면 매우 예민해진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상 낙원, 푼타델에스테
몬테비데오를 출발하며 푸른 초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2시간 정도 달리면 환상적인 해변이 한눈 가득 들어온다. 이 도시는 푼타델에스테(Punta del Este), 훌리에따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기도 하다. 푼타델에스테에 여름이 찾아오면 반도의 양쪽 바다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서쪽은 해안의 물결이 잔잔해 해수욕객들로 붐비고, 동쪽의 브라바 해안은 파도가 높아 윈드서핑과 요트가 바다를 메운다. 푼타델에스테에 대해 묻자 훌리에따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2월의 휴가철이 되면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갑부들이 푼타델에스테를 찾는데 해변가에는 그들이 지어놓은 아름다운 별장들이 즐비하다”고 소개했다. 1986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개최된 도시도  푼타델에스테다.


푼타델에스테는 우루과이 예술문화의 중심지다. 푼타델에스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인 카사푸에블로(casapueblo)는 피카소의 제자인 카를로스 파에스 빌라로(Carlos Paez Vilaro)가 오랜 세월 동안 쌓은 모래성이다. 삐뚤빼뚤 장난스럽게만 느껴지는 이 모래성은 한 때는 조각품에 그쳤지만 현재는 갤러리, 박물관, 레스토랑, 호텔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작가가 지난 50년간 발표한 미술품이 전시되어있고 연간 6만명 이상이 이곳을 다녀간다. 카사푸에블로 외에도 푼타델에스테에는 미술관, 해양박물관,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아르티가스 광장 등이 있다.

스타벅스가 없는 나라
우루과이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독특한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버스 안에서 마떼(mate) 마시는 것을 금지함’. 움직이는 차 안에서 마떼를 마시면 입을 데이거나 빨대에 찔려 다칠 수 있고, 주변 사람에게도 위험하다는 설명까지 함께 있다. 우루과이에서는 보온병을 옆에 끼고 손에는 빨대를 꽂은 잔을 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마떼란 이 잔을 지칭하는 단어이자 차 잎 또는 차 자체를 말한다.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에서도 마떼를 마시지만 우루과이 사람들에게 마떼는 생활의 일부다.


훌리에따는 “따뜻한 물이랑 마떼 잎을 가지고 다니면서 즉석으로 차를 만들어 마신다”고 마떼 문화를 소개했다. 마떼(찻잔), 쇠빨대, 마떼 잎, 보온병과 전용가방을 항상 들고 다니니 휴대용 차 자판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떼 문화의 중심지에서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전문점이 번창할리 만무하다. 훌리에따는 “우리는 커피 대신에 마떼를 마신다. 마떼는 삶의 동반자”라고 전했다.마떼와 더불어 우루과이에는 독특한 식문화 습관이 있다. 우루과이인의 저녁식사 시간이 오후 10시에서 11시 사이인 것. 보통 6시에서 7시 사이에 저녁식사를 하는 한국인에겐 신기하게만 들린다. 훌리에따는 “하루에 4끼를 먹는데 마떼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자주 먹기 때문에 늦은 저녁식사 문화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훌리에따는 한국에 오기 전 고민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캐나다와 한국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결국 내 나라와 계절도, 기후도, 시간도 정 반대인 한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우루과이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계절도, 기후도, 시간도 모두 반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남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기 충분한 나라다. 이번 방학에 우루과이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오직 모험심만으로 한국까지 온 훌리에따처럼 말이다.  


 강나라 기자 jiangnala@cauon.net
통역 이서진 학생(영어영문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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