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1일)은 개교 93주년 기념일이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분절해놓은 것이라며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일을 기점으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지금-여기를 둘러보며 미래로 나아갈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교기념일에 의미부여는 가치있는 일이다. 이제 2018년 개교 100주년까진 7년이 남았다. 지금 중앙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잠시 쉬며 질문을   던져볼 때다.


  요즘 정문 앞은 근대화된 조선 풍경을 보는 것만큼 낯설다. 푸른 잔디가 단정히 깔리고 우뚝 선 102관엔 학생들로 활력이 넘친다. 흑석동의 랜드마크로 손색없다. 대학 평가 순위는 차근히 오르더니 10위에 안착했고 전국에서 답지한 신입학 지원서는 1,2위를 다툰다. 학생들의 건의사항이 각종 게시판에 오르면 교직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신을 준다. 교수도 가만 있지 않았다. 논문 발표가 늘었고 강의평가도 의식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은 학생들로 가득해 매일이 시험기간이다. 법인교체 이후 근 3년 동안 중앙대는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눈부신 성과 못지않게 반작용도 뚜렷하다. 신캠퍼스 추진을 전제로 시작된 구조조정은 하남과 인천의 양날개 전략을 청사진으로 제시하며 구성원을 달랬지만 무산 위기에 처해 있다. 구조조정의 명분을 본분교 통합으로 전이시켰지만 신캠퍼스 부지가 확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구조조정 대상들에겐 지금 이 과도기를 인내할 힘이 없다. 신캠퍼스 전략은 무산이 아니라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라 말하지만 이미 멀티캠퍼스 전략에 의문을 제기했을 때도 무조건 간다며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기에 믿음의 강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멀티캠퍼스가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금 체감하게 된다. 보안을 이유로 윗선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집단지성의 힘을 무시한 결과는 암담했다. 합리적인 이의제기와 명확한 답을 주고받으며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소통과 혁신 사이에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은 비극이다. 소통만 강조하다보면 자칫 혁신의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 계열별위원회가 작성한 구조조정 초안은 사실상 기존 학과 편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개혁은 그 어원에서 드러나듯 누군가의 살을 찢는 아픔에서 시작된다. 이해당사자들끼리 모여 소통을 통해 혁신안을 내놓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해당사자를 배제하고 혁신을 이루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통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가정교육과 구조조정 사례에서 살필 수 있듯 사후 설득 작업으론 충분한 소통을 나눴다고 말하기 부끄럽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두고 이를 설득하는 작업만 반복되니 대학본부와 이해당사자가 서로를 대상화한 채 등을 돌리고 있다. 지금 중앙대에 필요한 건 대학본부와 이해당사자가 만나 논의한 결과 혁신을 이루는 진정한 소통의 경험이다. 개교기념일을 맞아 대학본부가 묘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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