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응징의 깃발이 그리스의 국회의사당, 신타그마(Syntagma)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90여일 이상 농성하고 있는 시위 주도자들은 최근 닥쳐온 경제 위기에 좌절했고, 20여년 이상 지속된 과두엘리트 정치를 단절하고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9월이 되어 대학생들이 캠퍼스에 돌아와 대규모 시위를 벌여 현 정권을 퇴진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고대 민주주의의 태동이라고 할 아테네에서의 시위는 결코 외국 부채를 지불하지 못해 야기된 경제적 위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뢰를 잃은 정치권에 대한 탄핵이었다.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임박하여 그리스는 이제 더 이상 구제 금융을 연장하거나 지불기한을 유예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 채권을 과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강등되었고, 유로존을 지켜내려는 독일과 프랑스의 정책의지에 매달려 있을 따름이다.

  문제는 유로존에 가입하고 있는 국가들의 재정적 불안이 다른 외채 수준이 높은 국가들에게 확산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이태리, 스페인 소위 PIGS 4국 남부유럽이 처해있는 경제적 침체현상은 유럽통합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세계적인 경제침체현상으로 더욱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이러한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삼대에 걸쳐 현재에도 집권여당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을 주도하고 있는 파판드로우(Papandreou)수상이나 야당인 자유주의 신민주주의당(ND)의 카라만리스(Karamanlis)가문을 포함한 소위 ‘정치명문가’에 대한 분노가 이미 정도를 넘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가로서 인구 천백만명이 조금 넘는 그리스가 국방비 수입을 세계 5위로 지출한다는 사실은 이와 관련된 부패구조를 의심할 만큼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정치권에 만연하다.

  그리스 경제위기는 위축된 소비경제를 진작시키거나 외채지불연장에 매달리는 거시경제지표관리로서만 극복될 수 없다. 소득 3만불 수준에 달하여 성장의 전환기를 모색해야 하는 그리스는 관광이나 농업에 의존한 발전만으로는 현상유지도 할 수 없다. 더욱이 대부분의 산업연계가 유럽연합 구도에서 특히, 독일에 의존하는 경제는 더 이상 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 아주 잘 정비된 아테네 지하철도 독일자본으로 건설된 사실은 유럽협력의 경제 비대칭성을 반영한다.

  터키를 먼저 다녀와, 이번 여행길에서 함께 대담을 나눈 계획경제조사센터 전문연구원이  “한국인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도 터키와 마찬가지로 한국 전쟁의 참여한 국가”라고 호의를 전하는 그에게 나는 그리스의 위기는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선 과두정치의 구조적 모순이고, 여 야 함께 스티그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 행선지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김형국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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