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숨도의 가을
逆行旅行(역행여행)

 문화공간 ‘숨도’에서 가을을 맞이해 여행을 준비했다. 도심한복판에 펼쳐진 산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역행여행은 3개의 패키지로 구성된다. 9월 29일 열린 역행 오리엔테이션과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되는 빌딩 트래킹, 마지막 14일에 열릴 달빛 축제까지. 기자의 체험기는 빌딩 트래킹에 한정시켜 구성했다.

 

 

 

 

 

 

 

 

 

역행여행을 결정하기까지
 2007년 고등학생 시절, 민효린의 ‘기다려 늑대’에 꽂혔었다. 그러나 대세는 원더걸스의 ‘텔미’였기에 조용히 원더걸스의 안무를 연습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소주보단 맥주가 좋았다. 그러나 ‘대학생 됐으면 소주정도는 먹어줘야지’라는 당시의 음주풍토에 굴하며 맥주를 떠나보냈다. 대세를 따르는 것도 잠시일 거라 생각했다. 잠시만 견디면 기호대로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여전했다. 커피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대세이기 때문에 카페에 들락거리고 있었고 모두들 2PM에 열광하기에 사랑하는 인피니트는 가슴에 묻어뒀다.
 

 제자리에 서서 과거를 돌이켜 봤다.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었을까.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의해 ‘살아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대세에 이끌려 온 일상에 쉼표를 찍기로 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기다려 늑대의 멜로디를, 몰래 마시던 맥주의 시원함을 찾아오기로 결심했다.


역행여행을 체험하다 
 도심 속에 산이 펼쳐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9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문화공간 ‘숨도’가 자리 잡은 숨도빌딩이 ‘숨도산’으로 변신한다는 것 아닌가. 역행이란 주제로 체험전시를 열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전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역행여행 빌딩트래킹’을 취재하고 싶습니다. 혹시 직접 체험할 수 있을는지요.”, “아, 네. 마침 내일 6시 50분 시간대가 비었네요. 방문하실 수 있으세요?” 다음 날, 트래킹 복장을 갖춰 입고 ‘숨도산’을 방문했다.
 

 첫 번째 코스에 들어가기에 앞서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었다. 현재의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로 핸드폰, 가방 등 자신의 물품을 내려놓으면 여행준비 끝! 본격적으로 트래킹에 나섰다. 첫 번째 코스는 난해했다. 원뿔인지 마름모인지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 의미를 알 수 없는 알과 신발 속 개구리라니. 역행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한국종합예술대학 무대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역행에 관해 해석한 작품이라 했다. 즉, 답이 없다는 것이다. 역행에 관해 무작위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연상하며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두 번째 코스에서는 역행하면 떠오르는 ‘연어’를 마주했다. 책극장의 책상에 누워있는 연어의 배 위에 각자가 생각하는 역행의 의미를 적어보는 코스였다. 펜을 집었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일상에서 아주 조금 벗어나 걸어보는 것’, ‘습관을 내려놓는 것’등 다양한 정의를 내려놓고 있었다. ‘현재의 일상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라는 문구를 수줍게 써놓고 다음 코스로 발길을 돌렸다.
 

 세 번째 코스에서는 ‘트래킹 kit(도구)’인 양초를 찾았다. 가이드가 다가와 촛불을 붙여주더니 7층으로 향하라 했다. 단, 절대로 촛불을 꺼뜨려서는 안되며 엘리베이터를 금지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촛불이 꺼질세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뎠다. 1층부터 3층까지는 괜찮았지만 곧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발은 자연스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러나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계단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라는 대세를 거부한다는 의미를 지켜야했기 때문이다.
 

 겨우 7층에 도착해 신비스러운 방에 안착했다. 은색의 벽지로 도배된 공간에 여러 색의 줄들이 뒤죽박죽 연결돼 있었다. 이 방은 살아가면서 맺은 혹은 맺어진 수많은 관계를 거슬러 역행해보는 코스였다. 공간 중간 중간에 질문이 있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어른 같은 사람’, ‘나와 같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사람’, ‘먼저 연락하게 만드는 사람’ 등의 질문에 동일한 대답을 내어놓고 나왔다.
 

 여섯 번째 코스를 가볍게 통과한 후 일곱 번째 코스를 찾았다. 10분 동안 묵언을 수행하며 다도를 익히는 코스였다. 중후한 중년의 남성분과 차를 마신 후 어떤 통로에 직면했다. 성인 여성의 키만한 인형들이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역행하는 것의 어려움을 체험해보는 코스라더니 정말 인형들이 빽빽하게 배치돼 있어 옮기는 걸음이 쉽지만은 않았다. 발을 내밀면 팔을 잡혀야 했고 팔을 빼내면 스텝이 꼬이고 말았다. 진심으로 역행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은 후, 10층으로 향했다. 10층에 있는 나무에 걸려 있던 시어를 5가지 골라 마지막 관문, 옥상을 방문했다.
 

 마지막 코스는 앞 관문에서 고른 5가지 시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옥상에 들어가기 전, 마음에 드는 천을 골라 문턱을 넘어섰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장관이었다. 황홀한 야경과 따뜻한 차, 부드러운 음악으로 꾸며져 있는 공간에서 천천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끝낸 후 1층으로 내려와 기자의 그림이 담긴 천으로 처음에 봤던 알을 감쌌다. 그렇게 역행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결심했다. 이제는 당당히 말할 것이라고. 아메리카노 맛없다고. 인피니트 같은 슬림한 아이돌이 좋다고.
 

글·사진 송은지 기자 ilnrv@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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