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언제 들래’ 혹은 ‘철 좀 들어라’라는 말은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말이다. 원래 철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아는 힘’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철이 든다’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접어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평소에 하고 싶어 하던 것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포기하고 인정하는 것이 일종의 철이 드는 과정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009년 10월에 일제시대부터 실시해오던 좌측통행방식을 우측통행으로 바꾸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배웠던 좌측통행을 어느 날 갑자기 우측통행으로 정부가 정한 것이다. 정부는 우측통행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이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많은 홍보를 하였다. 이러한 결과, 신기한 것은 나 자신부터 우측통행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늘날 지하철 계단에서 좌측통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짜증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5월에는 경찰청장이 ‘화살표 3색 신호등’의 전면 폐지를 발표하였다. 국민들이 새로운 ‘화살표 3색 신호등’이 아니라 기존의 신호등 체계를 선택한 것이다. 정부가 신호등에 화살표가 들어있는 방식이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이란 것을 국민에게 열심히 역설하고 적극 추진하였지만, 국민들이 오히려 이를 불편하게 여기면서 거부한 것이다. 물론 나도 ‘화살표 3색 신호등’을 보면서 신경질을 박박 내었다.

  ‘나는 가수다’라는 음악프로의 등장은 나로 하여금 매주 일요일에 약속을 피하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김연우가 출연하여 경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들이 다른 가수들과의 경연에서 밀려서 탈락한 것이다. 그 이후엔 내가 좋아하던 이소라 마저도 탈락했다. 나는 ‘나는 가수다’에서 500명의 청중평가단이 나와는 다른 선호도를 가진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음악전문가들이 칭찬한 가수조차도 일반 청중평가단에게는 외면당해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 장면도 종종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프로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잊은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남이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 세 가지 예는 우리 국민들이 모든 것을 슬기롭게 판단하여 합리적인 방향과 불합리적인 것을 구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자신만이 옳다고 끝까지 우기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철회하는 성숙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일찌감치 철이 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주위에선 일부 정치인과 인사들이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다수가 동의하는 것을 끝까지 틀린 것이고,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우기고 있다. 이런 철이 안들은 분들을 보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을 그냥 포기하고, 아니 김연우나 이소라가 다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내가 오히려 철이 안들은 것일까?

남영준 문헌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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