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우 교수의 작업실에 발을 디디자마자 그가 무대미술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는 문 정면에 위치한 무대 도면, 책장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공구들이 그의 직업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결정타는 2006년 수상한 ‘이해랑 연극상’이었다. 주로 연기자나 연출가에게 주어지는 이해랑 연극상을 무대미술가 최초로 수상한 박동우 교수. 한 눈에 들어온 이해랑연극상을 보니 무대미술에 인생을 바친 그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25년간 이어온 그 꿈의 시작은 단순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의 우상이었던 최인호 소설가의 인생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무대미술가라는 길의 발판이 됐다. 최인호 소설가가 졸업한 연세대 영문학과를 지원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인생을 살고자 했으나 어린 나이의 순수한 마음은 ‘낙방’이라는 상처로 돌아왔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재수의 길을 택했다. 재수시절, 새로운 우상이 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을 따라 연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나 첫 번째 우상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최인호 소설가가 몸담았던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갔다. 최인호 소설가로 인해 무대미술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최인호 소설가와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동우 교수는 최인호 소설가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가 얻은 영감의 산실들이 그의 서재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그는 책으로만 영감을 받는 것은 아니다. 2009년 작업한 작품 <영웅>의 경우 직접 현지답사에 나섰다. 하얼빈 역에서 일어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사건을 다룬 <영웅>의 무대를 효과적으로 꾸미기 위해 그는 직접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중국의 여순 감옥, 그리고 하얼빈 역까지 방문했다. 현장 답사 중 그의 머릿속에 연출된 그림들은 그대로 작업실 안에 들어와 있다. 현장답사에서 그렸던 그림을 작업실에서 이차원적 스케치와 입체적 모형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실 2층으로 시선을 돌리면 이제껏 만들어온 무대 모형들을 발견할 수 있다. 2층을 한가득 채울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25년간 그의 손을 거친 300편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00편이 넘는 작품의 무대를 연출한 그는 자신을 일컬어 시인이자, 화가이자, 건축가라고 말한다. 작품을 연구할 때는 시인, 스케치를 할 때는 화가, 모형을 만들 때는 건축가가 된다. 시작은 개념으로 끝은 세세한 단위로 표시되는 것이다. 물론 시인만큼 시를 쓰지 못하고 화가만큼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건축가만큼 건축을 잘하지 않는다는 그는 세가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무대미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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