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사회현상과 더불어 가족에 대한 학문적 접근도 다양화됐다. 서구에서는 성별분업에 기반한 중산층, 이성애, 남성중심적 가족체계의 효율성과 기능성을 주장했던 구조기능주의 이론, 가족 내 사회화 과정과 역할체계 및 가족의 형성해체에 관심을 가지는 상징적 상호작용론, 사회교환이론을 적용해 배우자 선택과 결혼, 부부관계, 성역할과 이혼 문제를 다루던 접근 방식 등이 가족에 대한 주류 사회학의 접근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가족 내 권력관계와 갈등에 주목하는 갈등이론이나 혈연중심적 가부장제가 계급 재생산의 기제가 되고 있다고 보는 페미니스트 이론들이 대안적 가족 이론으로 주목받아 왔다.
  특히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가족은 사회학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사로 다시 부각되었으며 기존의 주류 담론에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지구화의 확장 등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가족과 개인의 관계 변화는 사회이론의 주요한 이슈였으며 친밀성과 관계(들)에 관한 이론화가 사회학적 주목을 받았다. '친밀감의 구조변동'을 주장한 기든스(1992), 울리히 백, 그리고 게른샤임(1999,20005)의 저자 엘리자베스 백은 변화하는 사랑과 가족적 실천의 의미에 관한 연구를 주도했다.
  이로써 가족에 대한 서구의 사회학적 작업은 개인화이론(individualization tehory)과 가족사(family)연구를 주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화 이론은 개별적 선택과 협상의 차원에서 치밀성과 섹슈얼리티의 구조변동을 다루며 가족사 연구는 가족을 하나의 동태적 유기체로 보고 가족주기를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경향은 후기 산업화시대의 가족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넘어선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족을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영역인 교육과 돌봄노동, 친밀감의 상품화 등 다양한 사회 변동에 대응하는 가족의 전략 및 작동 방식에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기자본주의, 지구화 시대에 가족임금 및 실업보험과 동반자적 결혼, 친밀성이 중산층 가족 유지의 핵심이라는 최근의 서구 논의는, 역사적으로 다른 발전의 길을 걸어온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와 한국식 가족주의가 결합된 결과 기러기 가족과 다문화 가족이 형성되고 있다. 또한 계급양극화, 높은 교육열, 사회안전망의 미비 등으로 인한 저출산을 일종의 가족계급 재생산을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투자가족의 등장이 기존의 가족구조, 젠더관계 및 섹슈얼리티, 그리고 친밀성의 이해와 실천 방식에 있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스티비 잭슨 선생님의 연구는 한국적 맥락에서 가족 연구에 많은 함의를 던진다. 근대와 전통이라는 경계선에서 여성이 어떻게 협상하면서 가족관계와 친밀성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그의 연구는 특히‘서구화’와 ‘개인화’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이해되는‘근대화’개념을 확장히 가족의 의미와 실천을 젠더 관점에서 재고하게 한다. 특히 일본과 미국을 통한 이중의 식민화를 경험한 포스트 식민국가 한국의 경우 탈식민성과 근대성, 전통과 근대라는 모순된 교착지점이 있다. 이것이 한국‘가족’과 친밀성의 재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여성들은 일상의 실천을 통해 어떻게 이와 협상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여지를 준다. 식민지, 전쟁, 군사독재를 관통한 압축적 근대화 과정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전통의 그늘이 오늘날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성양식에 어떠한 잔여물로 남아 있으며 어떻게 가족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일까? 포스트식민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나영교수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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