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현대화(modernization)를 서구화와 동일시한다. 이러한 현대화의 단편적 이해 속에서 전통은 늘 파괴됐고 전통과 현대성(modernity)은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놓였다. 지난 27일 중앙대 사회학과 대학원 콜로키움에서 전통과 현대성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이뤄졌다. 영국 요크대의 스테비 잭슨(Stevi Jackson) 교수는 전통과 현대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조명했다.
  『Feminism and Sexuality : A reader』의 저자이자 성(Sexuality) 연구의 대가인 잭슨 교수는 홍콩과 영국 여성의 삶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양국 여성은 양육태도나 가족상에 대한 이해 방식에서 대조됐다. 홍콩의 여성은 자녀를 양육하기에 앞서 양육 목표를 정하며 자녀는 그러한 목표에 따라 수동적으로 자라난다. 반면 영국의 여성은 아이들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묻거나 의견을 들어주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차이는 가족의존적인 홍콩여성과 주체적인 영국여성을 만드는 데 크게 작용했다. 성 문제와 관련한 양국 여성의 시각 차는 가족상에 대한 상이한 이해에서 비롯됐다. 고전적인 가족상이 주류를 이루는 홍콩에서는 성 문제에 보수적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가족상을 인정하는 영국에서는 성 문제에 개방적이다. 이렇듯 중국의 문화는 전통을, 영국의 문화는 현대성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잭슨 교수는 새로운 사례 분석을 통해 논의를 반전시켰다. 전문직 여성을 분석한 이 사례에서는 영국의 여성이 가족에 대한 헌신도가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많은 영국 여성은 가정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경력(career)을 희생시키고 시간제(part-time)로만 일하고 있다. 반면 중국의 여성은 자신의 경력에 해가 가지 않는 정도로만 가족에 헌신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례, 즉 홍콩 여성이 주체적이고 영국여성이 가족몰입적인 것은 기존의 가치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잭슨 교수는 “여성의 일상에는 전통과 현대성이 공존한다(The tradition and modernity coexist in women’s daily life)”고 말했다. 전통과 현대성이 합치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기된 것이다.
  기존의 현대화는 전통이 현대성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화는 결코 체제의 이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화는 ‘전통을 새로운 맥락에서 재구성(reshape)’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전통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전통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패러다임에서 여성은 끊임없이 타협해야 한다. 온전한 전통도, 온전한 현대성도 없는 그 경계선에서 여성은 혼란을 겪는다. 전통은 여성에게 가부장적인 사회를 수호하는 역할을 강요하지만, 현대성은 그들로 하여금 가정에서 해방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성의 발현 양상은 문화·사회적 요인에 따라 제각각이라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 현대화가 야기할 수많은 이슈에도 불구하고 여성문제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다. 잭슨 교수는 강연을 마치며 “전통과 현대성의 경계에서 타협해야만 하는 여성에 대한 조명이 이뤄져야 한다(We should reshape the tradition where women negotiate the boundaries of tradition and modernity)”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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